단단한 밑동은 과감히 잘라내고

줄기 꺾이지 않게 가볍게 손질

지지거나 데쳐서 먹는데

아삭함 살리려면‘살짝’이관건

오일^레몬즙 뿌리면 풍부한맛

계란^토스트 곁들이면한끼음식




봄나물을 사러 백화점 식품코너에 들렀다. 참취와 원추리를 집어 들고 마늘쫑은 일단 비싸서 다음을 기약하다가 옆 진열대의 아스파라거스가 눈에 들어왔다. 사철 살 수 있는 채소이지만 아스파라거스의 제철은 봄이다. 그렇다면 봄나물 사이에 꼽사리 끼워 식탁에 올려도 좋지 않을까. 신나게 집어 들었는데 약간 김빠지게 수입산이었다. 카트에 담기는 했지만 왠지 아쉬워 바로 그 자리에서 인터넷을 뒤져 전남 구례산 1㎏(2만원)도 주문했다.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일종의 ‘전설’이 있다. 근 십 년 전에 주워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주말 직거래 장터에서는 근처 농가에서 새벽에 잘라내 줄기에 즙액이 고여 있을 정도로 싱싱한 아스파라거스를 판다는 내용이었다. 안타깝게도 샌프란시스코를 갈 때마다 아스파라거스 철은 아니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해볼 수는 없었다. 토요일에 실리는 ‘세심한 맛’ 원고의 마감날인 목요일 오전에 드디어 배송된 구례산 아스파라거스에도 즙액이 고여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봄의 싱싱함쯤은 아쉽지 않게 머금고 있었다.

‘그거 스테이크 옆에 나오는 채소잖아.’ 전설 같은 게 있거나 말거나 우리에게 아스파라거스란 대체로 이런 식재료로 통한다. 고기를 보좌하는 채소. 대중적이지도 싸지도 않으니 고급 요리에서 한두 개 정도 체면치레하듯 먹는 채소. 내가 아스파라거스라면 좀 억울할 법한 인식이다. 무엇보다 맛이며 향이 상당히 강하면서도 개성적이라 굳이 고기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고기 없이 아스파라거스 먹는 요령을 살펴보자. 일단 너무 굵지 않은 것을 고른다. 성인 남성인 나는 네 번째 손가락인 약지를 기준으로 삼아 줄기의 지름이 1.5㎝ 안팎인 것을 선호한다.

밑동은 잘라내고, 줄기는 필러로 살살

손질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는데, 품이 많이 들지는 않는 가운데 ‘가볍게’가 핵심이다. 아스파라거스는 연약한 식물이라 손질 과정에서 줄기가 꺾이거나 봉우리가 떨어지기 쉽다. 따라서 손질이 끝날 때까지 먹기 어려운 부분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머지를 멀쩡히 남겨두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 손질의 첫 단계는 단단한 밑동 잘라내기이다. 가는 것이라면 대체로 괜찮지만 나의 기준인 지름 1.5㎝만 되어도 맨 아랫부분은 겉껍질이 나뭇가지처럼 뻣뻣하고 딱딱할 수 있다. 잘라내지 않으면 잘 익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익더라도 껍질이 조각조각 갈라져 잘 씹히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 이 사이에 끼기도 한다. 마늘쫑의 웃자란 밑동을 씹어 보았는가? 딱 그 느낌인데 아무래도 아스파라거스는 굵다 보니 좀 더 불쾌할 수 있다.

아스파라거스 묶음 가운데 한 개를 무작위로 집어 맨 밑의 잘린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 본다. 그럼 손가락의 힘에 딸려 올라오다가 저항하는 지점이 있다. 조금 더 힘을 주면 이 지점에서 밑동이 꺾인다. 껍질의 단단한 정도가 갈리는 지점이라는 의미이다. 아스파라거스는 대체로 같거나 비슷한 굵기끼리 분류해 포장하므로 한 묶음에 포함된 것들은 모두 그 지점 위로 껍질이 연해 먹을 수 있다. 따라서 꺾어낸 아스파라거스를 기준 삼아 나머지의 밑동도 칼로 썰어낸다. 때로 줄기를 많이 잘라낸다 싶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혹시나 아쉬운 마음에 익혀 먹어보면 역시나 씹어 넘기지 못하고 뱉어내고 말 테니 과감히 잘라내자.

끝의 봉오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아스파라거스를 물로 가볍게 씻어 2단계를 넘긴다. 3단계인 껍질 벗겨 내기는 선택이다. 밑동만 잘라내도 아스파라거스는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겉껍질을 벗기면 줄기의 연한 속살을 사뿐사뿐 씹는 맛이 훌륭하다. 도마나 작업대에 키친타월을 한 겹 깔고 아스파라거스를 올린다. 그렇게 놓인 채로 봉오리 끝을 쥐고 돌려가며 껍질을 필러(감자 깎는 칼)로 가볍게 벗겨 낸다. 딱 봉오리만큼의 간격을 둔 뒤 그 아랫부분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힘을 많이 들여 필러를 움직이면 아스파라거스가 눌려 꺾이거나 껍질과 함께 속살까지 깎아낼 수 있으니 존재하지 않는 껍질을 벗겨 내는 마임(무언극)을 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가볍게 손을 움직인다.

살짝 지지거나 데치거나

이제 익힐 차례이다. 손질 과정 전반에서 ‘가볍게’가 핵심이었다면, 조리에서는 방법에 상관없이 ‘살짝’이 관건이다. 너무 익히면 줄기의 아삭함이 사라져 아스파라거스는 비참해진다. 이를 막기 위해 ‘살짝’ 익혀야 하니 아예 덜 익었다 싶었을 때 열원에서 꺼내고 남은 열에 나머지를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집의 조리 여건에서라면 팬에 지지기와 끓는 물에 데치기의 두 조리법만 익혀도 충분하다. 일단 지지기부터. 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중불에 올려 기름이 반짝이면 아스파라거스를 올린다.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종종 뒤적이며 5~7분 고루 익힌다. 접시에 담고 아스파라거스가 뜨거울 때 버터 약간을 올려 녹여 맛을 더하는 것도 좋다.

두 번째 조리법은 데치기이다. 팬에 지지기보다는 약간 난이도가 높다. 일단 주 조리도구인 냄비뿐만 아니라 건져 낼 체 등의 보조 도구까지 필요하니 준비가 좀 더 번거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지기에 비해 남은 열(끓는 물에서 건져낸 뒤)로 과조리 되기도 더 쉽다. 하지만 기름을 쓰지 않고 익혔을 때 아스파라거스가 보여 주는 맛의 표정이 있을뿐더러 샐러드에 더 적합하다. 익는 정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데치기 자체는 간단하다. 손질한 아스파라거스의 길이보다 큰 지름의 냄비에 물을 3분의 2가량 담아 불에 올린다(전기주전자가 있다면 끓여 담는 편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 원래 ‘채소도 파스타처럼 바닷물만큼 짠 소금물에 데쳐야 간도 잘 배고 싱싱한 녹색도 살아난다’가 정석으로 통했는데, 실험과 연구를 통해 소금은 큰 의미가 없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표면이 살짝 투명해지고 집게로 들어 올렸을 때 형태가 완전히 살아 있는 채 집은 부분을 중심으로 살짝 굽을 정도까지만 데친다. 2~4분이면 충분할 것이다.

끓는 물에는 소금이라면, 데친 뒤 식히는 물에는 얼음이 정석으로 통했었다. 물이 차가울수록 식재료의 온도가 빨리 내려가니 그만큼 연약한 식재료의 과조리를 더 잘 막아 준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010년대로 접어들며 요리연구집단인 ’모더니스트 퀴진’이 상온의 물과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이제는 과거의 이론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과조리만 막을 생각이라면 안심하고 수돗물에 담가 식히고, 만약 차가움이 주는 싱싱함까지 맛보고 싶다면 편의점 돌얼음(2018년 9월 1일자 참조)을 사다가 물에 더한다. 수돗물이든 얼음물이든, 충분히 담가 식혔다가 체로 건져 종이 행주에 올려 물기를 말끔히 걷어낸다.

된장에 찍어먹고, 치즈 뿌려먹고, 계란 얹어먹고

지지든 데치든 이제 아스파라거스가 익었다. 어떻게 먹는 게 좋을까? 온전한 채식의 영역에서 시작해 조금씩 재료를 통해 맛의 켜를 보태보자. 먼저 여느 샐러드처럼 산과 기름으로 산뜻함과 풍부함을 보태 먹을 수 있다. 여느 녹색 채소처럼 아스파라거스도 약간의 산을 만나면 쌉쌀함에 균형을 잡아주며 산뜻함이 한결 살아난다. 한편 기름은 아스파라거스 특유의 맛과 향을 좀 더 잘 살려주는 한편 매끄러움을 한 자락 접시 위에 깔아 준다. 한편 레몬즙과 올리브 기름 같은 ‘외국’ 재료만 굳이 써야 하나? 라고 마뜩잖아 할 이들에게는 된장이 섭섭함을 덜어줄 수 있다. ‘익히든 날 것이든 모든 채소는 웬만하면 초고추장’이니 아스파라거스도 못 찍어 먹을 건 없지만 아무래도 발효의 깊고 구수한 맛과 더불어 신맛도 갖춘 된장이 아스파라거스에는 조금 더 잘 어울린다. ‘기본적 샐러드 드레싱(비네그레트)의 기본 비율인 기름 3 대 산(레몬즙, 식초) 1’에 된장을 드레싱이 너무 걸쭉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더해 잘 풀어 아스파라거스에 끼얹거나 버무린다.

이제 채식을 넘어 동물성 식재료로 맛을 보태 보자.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낼 수 있는 식재료로는 이탈리아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가 있다. 파스타에 쓰듯 아스파라거스에도 갈아 솔솔 뿌리면 ‘치즈의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짭짤함과 고소함, 진한 감칠맛을 한꺼번에 불어넣어 차원이 다른 요리가 된다. 결이 조금씩 다른 고소함끼리 엮어 줄 수 있어 견과류도 아스파라거스와 잘 어울리는데, 지방의 풍성함에 나름의 균형이 잡힌 아몬드가 가장 좋은 짝이다. 채식의 일부로 소개하면 좋겠지만 제맛을 내기 위해 버터에 볶아야 하므로 안타깝게도 동물성 재료로 소개할 수밖에 없다. 껍질을 벗겨 얇게 저민 아몬드를 팬에 녹인 버터에 노릇해질 때까지 6, 7분 볶아 그대로 아스파라거스에 끼얹어 먹는다. 아몬드 자체의 맛만 채식에 보태고 싶다면 버터 없이 팬에 살짝 구운 아몬드를 다지거나 갈아 비네그레트에 섞어준다.

마지막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중심으로 끼니 음식을 만들고 싶다면? 얹어준다. 좋아하는 조리법으로 익힌 아스파라거스를 접시에 가지런히 깔고 그 위에 각종 단백질 식재료를 얹으면 된다는 의미이다. 가장 품이 덜 드는 재료는 계란이다. ‘세심한 맛’ 계란 편(2018년 8월 18일자 참고)에 소개한 것처럼 올리브기름에 튀기듯 익히고 토스트를 곁들인다. 노른자가 굳지 않도록 익혀야 아스파라거스와 토스트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소스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베이컨을 즐긴다면 두어 쪽 팬에 먼저 굽고, 녹아 나온 기름으로 아스파라거스와 계란을 차례로 익혀 같이 먹는 것도 좋다. 좀 더 공을 들이고 싶다면 연어도 있다. 미디엄 레어 이하로 구워 역시 얹고 썬 레몬을 곁들인다. 동물의 고기를 아예 물망에 올리지 않더라도 아스파라거스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하얀색은 순한 맛, 자주색은 더 달아요

모든 아스파라거스가 녹색을 띠는 건 아니다. 녹색만큼이나 유명한 새하얀 아스파라거스가 있다. 색깔만으로 신비함을 자아내는 흰 아스파라거스는 사실 좀 딱하다. 땅에 묻거나 다른 수단으로 빛을 완전히 막아 광합성을 원천 봉쇄해 엽록소를 전혀 발달시키지 못해 창백하기 때문이다. 녹색 일반 아스파라거스보다 맛이 좀 더 순하면서도 섬세하며 고급이라 가격도 높지만 그만큼 최선의 맛을 유지하는 기간도 짧다. 한편 자주색 아스파라거스도 있는데, 블루베리 특유의 색깔을 책임지는 색소 안토시아닌을 함유해 레드와인 색에 가까운 자주색을 띤다. 당 함유량이 녹색보다 20% 높아 순하면서도 더 달다. 굵고 튼실해 아래 절반 정도는 잘라내 버리고 조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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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는 색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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