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이메일을 열어보니 '우리 엄마가 책을 냈어요.'라고 쓴 켈리의 메일이 있었다. 켈리는 십 년 전 즈음에 돌아가신 신 할머니의 외손녀다. 할머니 막내딸이 동화를 쓴다더니 책을 출판했나 보다. 책을 주문하려고 작가 이름과 타이틀을 옮겨 쓰려니 할머니와 함께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신 할머니는 혼자서 양로원을 찾아왔던 분이다. 삶의 끝머리를 스스로 정리하겠다며 혼자 찾아오는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할머니라고 불렀지만 그 당시 일흔 살을 갓 넘긴 아주 세련된 여성이었다. 가장 노릇하며 사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도 없이 살아온 할머니가 암을 얻은 것은 삼 년 전이라고 했다. 삶의 끝자락을 누구의 동정이나 방해 없이 정리하고 싶어 스스로 양로원을 찾았다고 했다. 키모데라피도 중단했다고 했다.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하는 할머니에게 죽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미래처럼 보였다.
살다 보면 그냥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 생각이 통하는 것 같은 느낌, 신 할머니는 처음 입소할 때부터 그런 분이었다. 남들 눈에 차별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사적인 감정을 감추려고도 해 봤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입소할 때 두 달 정도 살 거라던 의사의 진단과 달리 할머니는 일 년 넘게 더 사셨다. 그의 마지막 생애를 함께 하는 동안, 할머니의 임종은 내가 곁에서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유한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한부 삶이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맞닥뜨리면 반응이 정말 제각각이 된다. 신 할머니는 마치 해야 할 일에 우선순위를 설정해 놓았던 것처럼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나갔다. 불륜을 용서하지 못해서 이혼했던 남편, 그 때문에 깨진 가정과 관계들 그리고 사이가 멀어졌던 딸들에게 진실한 감정을 보여주었다. 숨 쉬고 있는 순간에도, 잠자리에 드는 행동에도, 한 코 두 코 뜨개질을 하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내적 평화를 감사해했다.
잠자는 듯 떠나기를 소원했던 할머니는 그 희망대로 그렇게 떠났다. 그의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기를 바랐었지만,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겨 모두 잠든 시간에 홀로 떠났다. 아침 라운딩에 방문을 열었을 때 할머니는 양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마치 행복한 꿈을 꾸는 것처럼 누워있었다. “아! 천사 같다.” 하고 감탄할 정도로 평온해 보이던 표정은 내게 슬퍼하지 말라고 남겨준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신 할머니는 양로원을 개원한 이래 자신의 방에서 임종한 최초의 할머니였다. 사실, 양로원에서 임종을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임종이 며칠 사이로 가까워지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다. 그 이유는 안락하게 고통 없이 임종을 맞게 하려함이지만, 자녀와 지인들이 환자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로원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게 생존의 모습을 기억에 남기는 것이 정신 건강에 훨씬 도움 되는 일이기도 하다.
호스피스의 선구자인 닥터 퀴불러 로스의 이론에 ‘죽음의 5단계’ 가 있다. 죽음이나 암 선고처럼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사실로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 할머니는 타협과 수용의 단계만 거쳤던 것 같다. 삶의 모습과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할머니,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 지, 의지력과 자율성, 지성과 존엄, 관계와 배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닌 가치의 중요함을 깊이 깨닫게 해 주셨다.
십년 세월이 흘렀지만, 가끔씩 신 할머니가 생각날 때가 있다. 함께 털실을 사러갔던 상점을 지나칠 때, 새우 물만두를 시켜 먹을 때, 찻집에서 매실차를 시킬 때.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을 회상한다. 돌아보니 그때 할머니 나이가 고작 일흔 하나, 지금 같으면 ‘아가씨’ 소리 들을 나이에 작고하신 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