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소나기가 내리려는 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어느 새 주위가 어둑해 지고 섬광이 번쩍인다. 순간 격정적으로 쏟아지는 비가 폭우로 변한다. 갑자기 한바탕 물 잔치를 치르고는 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뗀다. 투명한 푸른 하늘이 반갑다. 성하(盛夏)의 뜨락에서 여름이 노크하는 감각들을 놓치지 말라는 성화에 팬을 들었다. 요즘 들어 쉴 새 없이 호우주의보에 폭염주의보 재난을 알리는 문자에 잦은 비소식까지 바짝 곁에서 서성인다. 소나기는 어김없이 스콜처럼 찾아 들곤 한다.
에어컨 바람에 겉옷 하나는 늘 챙겨 들고 다니다 보니 계속 긴 팔 차림으로 여름을 날 수도 있겠다 싶다. 사실 겨울 보다는 여름을 반길 수 밖에 없는 체질이라, 여름 소식을 나누다 보면 여름 예찬이 되기 일수다. 추위를 못 견디는 편이라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 보다는 늘어지는 여름이 낫다. 한 여름에도 자동차 에어컨 바람이 훅 끼치면 재채기를 연발하는 터라 에어컨 스위치 버튼을 잠그고 다닌다. 유난히 추위에 민감한 터라 움츠러드는 겨울 보다 늘어지는 여름이 훨씬 견디기가 쉽다. 병 주고 약 주는 듯한 여름 밤의 시원한 감각 이며, 창 밖으로 비 오는 광경을 구경하는 여유로움에 대한 감사함 같은 소소한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여름이라 한 낮 땡볕만 잘 피한 다면 여름 소식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여름은 눈 가는 곳 마다 생명력으로 가득해서인지 살아있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기나긴 해 아래 초록은 더욱 짙어 지고 열매들은 성숙을 향한 기지개를 쭉쭉 펴고 있다. 모든 생명체가 성장하는 계절이다. 오늘도 자연은 나를 가르치고 나는 자연에게서 성장과 완숙을 배운다. 온갖 생명의 활기찬 호흡이 이어지고 있다. 바람이 흔들어 주어야 흔들리는 가지 끄트머리에 작은 흔들림이 파르르 파문처럼 묻어난다. 나뭇잎보다 작은 빨간 가슴을 가진 새 한 마리가 잎새 사이로 날아든다. 높고 파란 하늘 아래 움직임 없는 구름 한 점이 눈이 시리게 한다.
뜨거운 여름이 계절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달력에 기록된 숫자들이 세월에 실려 넘겨지고 있는데, 하루들을 징검다리 건너 듯 흘러 보내도 되는 것인지 여름날이면 유독 시간 강박증에 맥이 빠진다. 다가올 날들은 갈수록 쇠진해져 갈 것이 분명하다. 정답을 알고 시험지를 받아 든 것 셈이긴 하지만, 인생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서면 언제나 오리무중, 우왕좌왕 하게 되지 만 어차피 마지막은 절명이기에 어쩌면 정답을 알고 있다는 건 유한성에 대한 인식과 자각 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마치 극비 문서를 해독한 것 마냥 미세한 떨림이 가슴을 훑고 지나 간다. 어쩌면 집중력의 바닥이 저만큼 보이는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몇 번의 여름이 나이든 아낙 곁을 스쳐 갈까. 남은 날 동안 주어질 여름을 미래라고 불러본다. 기약할 수 없는 미래이지만, 작렬하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정열도 담력도 나약 해 졌을 터인데. 그럼에도 미래라는 다가올 날들을 기다림 하려한다. 계절들의 소식은 빈틈을 남겨선 안된다. 계절들은 언제나 빈 틈 없이 채워주고 떠나려는 의도적 도전을 아끼지 않으며 환승을 해 왔었으니까. 저장된 삶의 표정들은 제각각 일 터인데, 자연과 인생과 계절의 소식을 시(詩)와 수필이라는 기록으로 남겨보려는 시도에 몰두하다 보면 언어들의 나열에 실망이 느닷없이 닥쳐올 것이란 예감이 있긴 하지만 후회는 없을 것이다. 여름 소식은 여름을 견디라는 말이 아닌 잠시 쉬어 가라는 자연의 이정표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얻어내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부족한 무언가를 충만하게 채운 후에 라야 비로소 떠나는 계절임을 알리고 싶은 것이 여름 소식 중 으뜸이었는데. 자연 섭리를 따라 생을 지켜내느라 뜨거운 기도의 눈물을 흘려본 자라야 여름이 품은 열정이 겸손임을 깨우칠 것이다. 지루한 비소식에다 습한 열대성 등고선 까지 찌부등한 소식으로 일관 될 수 밖에 없는 여름 소식이 되기 쉬운 시기라서 내일이라는 미지수에 뭔가를 걸어보려는 설렘이 앞장서곤 한다. 해서 여름 소식은 따로 마련 하지 않아도 풍성 하기 이를 데 없음을 반길 수 밖에 없음이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숨막히는 더위의 결을 가다듬는 푸른 하늘처럼, 기대 되는 여름 소식을 가득 실은 소나기처럼.







![[독자기고] 고 짐 레이니 대사님 영전에](/image/295899/75_75.webp)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한미 동(혈)맹의 중요성](/image/295725/75_75.webp)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19)](/image/295602/75_75.webp)
![[삶과 생각] 미국의 승리와 8.15 광복](/image/295779/75_75.webp)
![[수필] 삶의 축을 찾아가는 길](/image/295724/75_75.webp)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이 보상하는 물 피해와 보상하지 않는 물 피해](/image/295729/75_75.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