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수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지역뉴스 | | 2025-03-27 18:12:4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목련꽃 그늘 아래서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아침신문을 주우러 마당에 나왔다가 목련꽃에 발목이 잡혔다. 며칠 전만 해도 겨우 꽃눈만 내민 채 거뭇했던 이웃집 목련나무 가지 끝에선 꽃망울이 한창이다. 하얀 꽃망울이 마치 합장한 동자 스님의 여린 손끝 같기도 하고, 맑은 물에 헹궈 곧추세워놓은 붓 같기도 하다. 

 

봄이면 가장 먼저 피는 꽃, 엄마가 생전에 제일 좋아 하셨던 꽃이다. 엄마 생각에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옆에서 들려온 '엄마! 뭐해?' 하는 소리에 깜짝 깨어났다. 아직 쌀쌀한 데 반소매 차림인 딸애가 내 옆에 서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야, 감기 들면 어쩌려고, 옷 더 껴입고 가.' 꽥 소리를 지르고선 피식 혼자 웃었다. 내 여고시절에도 겨울이면 내복을 입히려 했던 엄마와 자주 승강이를 벌였다. 지금 내 모습이 딱 엄마 모습이다. 

 

중학교 입학시험 결과 발표를 보러 갔던 날이었다. 합격자 명단 벽보 속에 내 수험번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엄마는 땅만 보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엄마의 침묵에 겁먹은 나는 죄인처럼 그 뒤만 졸졸 따랐다. 광화문 네거리에 도달했을 때 느닷없이 엄마가 국제극장에서 영화를 보고가자고 했다. 어떤 외국영화를 상영했었던 것 같다. 얼마가 지났는지, 어깨를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보았던 엄마의 퉁퉁 부은 두 눈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행하게도 입시 경쟁이 없는 미국에서 사는 덕분에, 엄마처럼 슬픈 영화를 핑계 삼아 눈이 뻘게지도록 울어야 하는 일이 내게는 없다. 게다가 나는 아이들이 반찬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가차 없이 밥상을 치워버리며 버릇을 들인 매몰찬 엄마다. 그뿐인가. 자식의 행복만큼 내 몫의 행복도 당당하게 챙겼기에, 애면글면 덧없는 희생과 인내를 강요받은 적도 없다. 

 

사춘기 시절 내가 원하는 것을 막기라도 하면, 며칠씩 밥도 안 먹고 방문까지 걸어놓은 채 침묵으로 대항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나중에 나와 똑 닮은 딸을 낳아 키워봐야 엄마 심정을 알게 될 거라며 한숨을 내쉬셨다. 돌아보면 엄마는 친구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딸만 곁에 있다면 살 수 있는 사람 같았던 엄마. 밖으로 도는 남편에게 아내의 존재감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나였음을 이제 알겠다. 

 

남의 부모 보살피는 일로 고생하는 딸에게 얹혀살면, 내 자식만 더 힘들게 하는 거라고 고집을 피우다가 생의 끝자락이 되서야 겨우 찾아오셨던 엄마. 제 자식 제 남편만 챙기느라 엄마는 뒷전으로 미루고 살았던 딸을 그래도 효녀라고 불러주었던 엄마, 뒤늦게야 후회와 연민으로 마음을 뒤척이는 미련한 딸이다.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린 적이 있기는 했었는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생전에 즐겨 부르셨던 노래 가사처럼 공원묘지 큰 나무 그늘 밑에서 엄마는 영면에 들었다.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서둘러 꽃을 피웠다가 잎이 나오면 스러지는 목련꽃, 그래서 하얀 목련의 꽃말이 이루지 못할 사랑인 걸까. 누구나 자기만의 애틋한 이야기 하나 둘 가슴에 품고 사는 것. 아마도 그게 우리네 인생인 듯하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헉! 집  뒷마당서 거대한 흑곰이 ‘어슬렁’
헉! 집 뒷마당서 거대한 흑곰이 ‘어슬렁’

포사이스서…며칠 새 두번째 포사이스 주택 뒷마당에 대형 흑곰이 출몰해 화제다.17일 폭스5 뉴스에 의하면 포사이스 카운티 소니 마운틴 인근 지역 한 주택 뒷마당에 거대한 크기의 흑

조지아 간호사 부족, 브레노우대 편입 폭 확대
조지아 간호사 부족, 브레노우대 편입 폭 확대

간호인력 10년간 21% 부족기술전문대와 협약 편입 길  게인스빌 소재 브레노우 대학교(Brenau University)가 조지아주 기술대학 시스템과 전격적으로 시스템 전반을 아우

의료용 대마, 환자에 직접 배송해 준다
의료용 대마, 환자에 직접 배송해 준다

주정부,관련 제도 개편 추진 중법 개정 후 등록환자 급증하자 조지아 정부가 의료용 대마를 환자 자택에 직접 배송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조지아 주정부

글로벌감리교, 이민법 세미나 온라인 개최
글로벌감리교, 이민법 세미나 온라인 개최

교회와 성도 위한 바뀐 이민법 안내GMC 한미연회, 온라인 세미나 개최 글로벌감리교회(GMC) 한미연회 평신도위원회(위원장 김성권 장로)는 오는 9월 15일과 22일, 두 차례에

대낮 70대 여성 집에 총격 난사
대낮 70대 여성 집에 총격 난사

디캡서…침실에 총탄 7발경찰 “절도범 소행 추정” 대낮 70대 여성이 살고 있는 주택에 총탄 수발이 발사되는 일이 벌어져 경찰에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일단 절도범의 소행으로 추정

〈포토뉴스〉사라진 한인회관 내 김백규 회장 사진
〈포토뉴스〉사라진 한인회관 내 김백규 회장 사진

애틀랜타한인회관 내에 전시된 역대 한인회장 사진 중 김백규 전 회장의 사진 쏙 빼내 사라진 사실이 15일 확인됐다. 상단 사진은 2022년 촬영된 것으로 아래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코요테 목격 급증…실제 개체 수도 늘었나?
코요테 목격 급증…실제 개체 수도 늘었나?

전문가 “늘어난 것처럼 보일 뿐”카메라 보급 늘어 온라인 공유 ↑ 최근 몇 주 사이 메트로 애틀랜타 여러 지역에서는 코요테 목격 사례가 심심치 않게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애틀랜타한인회, '빛으로 이어진 81년' 광복절 기념식
애틀랜타한인회, '빛으로 이어진 81년' 광복절 기념식

법원 명령으로 한인회관서 기념식차세대·동포들 한인회관 가득 메워한인회관 조형물 설치 금지 가처분 제36대 애틀랜타한인회(회장 박은석, 이사장 강신범)은 15일 오후 5시 애틀랜타

현대차 이어 오픈AI…서배나 주택시장 급성장
현대차 이어 오픈AI…서배나 주택시장 급성장

올해 진정세 후 다시 개발 ‘붐’“현대차 발표 후 10년치 성장”오픈AI 데이터 센터로 수요 ↑ 현대차 진출 발표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온 서배나 지역 주택시장이 다소 안정세

이민서류 ‘온라인 접수 의무화’ 시대
이민서류 ‘온라인 접수 의무화’ 시대

온라인 개시 180일 후USCIS, 의무화 가능게종이 신청 단계적 폐지고령·디지털 취약층 우려 향후 USCIS에 제출되는 이민 관련 서류의 온라인 의무화 제도가 추진된다. [로이터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