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현지매체 폭로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가 넘는 피해를 가져온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중심에 있는 권도형(32) 테라폼랩스 공동설립자가 공범인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히기 전, 세르비아의 고급아파트에 은신해 숨어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고 현지 언론매체 노바가 지난 6일 폭로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권씨는 수도 베오그라드의 부촌인 데디네에 있는 고급 아파트 ‘앰배서더팍'의 복층형 한 채를 구매해 몇 개월간 거주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노바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 아파트는 권씨의 측근인 한창준씨가 200만 유로(215만 달러)에 구매했다고 전했다. 권씨와 한씨가 이곳에 거주하던 시기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적색 수배 명단에 올랐을 때다. 권씨와 한씨는 이외에도 주차 공간 2칸도 구매했다. 이들이 적어도 차량 2대를 보유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현지 매체인 DL 뉴스는 이 아파트가 외교관과 부유층이 거주하는 고급아파트 단지라고 소개했다. 이 매체는 이곳에서 한 주민에게 권씨와 한씨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본 적이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주민은 “안경과 긴 머리를 한 마른 체형의 남성이 단지 앞에서 검은색 고가 차량에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내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주민이 밝힌 인상착의는 한씨와 일치한다.
DL 뉴스는 권씨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세르비아 당국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낼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면서 과연 세르비아 당국이 권씨의 행적을 추적해 체포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스럽다고 전했다. 또한 권씨가 은신했던 아파트가 주세르비아 한국 대사관에서 차로 6분 거리에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한국 당국은 세르비아 현지 경찰과 협력해 권씨를 추적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권씨는) 훨씬 더 가까이에 있었다"고 꼬집었다.
권씨는 해외 도피 중에도 가끔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에 등장하며 공개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해 3월 초 뉴욕타임스(NYT)와 통화에서 자신의 거주지를 당국과 공유하겠다는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으며 “그들은 분명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테라폼랩스 창업자로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에 입국한 후 지난해 3월23일 현지 공항에서 한씨와 함께 UAE 두바이행 전세기에 탑승하려다 위조여권이 발각돼 11개월간의 도피 행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권씨는 지난 3월23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외국인수용소로 이송돼 미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한편 권도형과 테라폼랩스를 상대로 연방 증권당국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지난달 배심원단이 투자자들을 속인 책임을 인정하는 평결을 내린 가운데 소송에서 승소한 연방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들에게 총 53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해 달라고 연방 법원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의 조카 신현성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와 한창준씨 사이의 ‘3각 공모’에 대한 한미 양국의 수사 및 재판 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