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증권거래위 소송
당국 “테라는 사상누각”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가 넘는 피해를 가져온 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중심에 있는 권도형(32)씨가 한국과 미국 중 어디로 송환될지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미국에서 권씨의 사기 혐의에 대한 궐석 재판이 시작됐다.
당초 한국 송환이 결정됐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몬테네그로 현지 대법원이 지난 22일 송환 보류 결정을 내리고 대검찰청의 적법성 판단 요청에 대한 법리 검토에 착수함에 따라 미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연방 증권거래위원회(SEC) 변호인 데번 스타렌은 지난 25일 뉴욕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민사 재판에서 “테라는 사기이자 사상누각이었으며 그게 무너지자 투자자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했다.
SEC는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테라의 안정성에 대해 투자자들을 속여 거액의 손실을 입혔다면서 2021년 11월 민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권씨는 공범인 신현성씨와 함께 2018년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를 설립한 뒤 암호화폐인 테라와 루나를 발행했는데 알고리즘을 통해 루나의 공급량을 조절해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로 고정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테라폼랩스는 2021년 5월 테라의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가격을 부양하기 위해 제3자와 비밀리에 계약해 다량의 테라를 매수하도록 했다고 SEC는 밝혔다. 이 같은 시세 조작으로 테라의 가격이 1달러 수준으로 회복됐으나 권씨와 테라폼랩스는 테라의 알고리즘 덕분에 가격이 반등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5월 테라의 가치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떨어졌고 결국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면서 투자자들이 400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SEC는 추산했다. SEC는 소송에서 권씨가 테라폼랩스의 블록체인이 한국의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 ‘차이'에 사용됐다고 홍보했으나 실제 사용된 적이 없으며 홍보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SEC는 결론지었다.
차이는 권도형씨와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했던 신현성(39)가 2018년 9월 설립했던 ‘지구전자결제’에서 사명을 바꾼 회사로 테라에서 CFO로 일했던 한창준(37)씨가 2019년 6월 차이 대표 자격으로 테라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권도형씨와 함께 도피 중 몬테네그로 당국에 체포됐던 한씨는 한국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로 지난 2월 한국으로 송환돼 검찰에 의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SEC는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내부 고발자로 추정되는 두 명과 결제 앱 ‘차이'의 최고 제품 책임자의 증언을 통해 권씨측의 혐의를 입증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재판은 권씨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몬테네그로에서 권씨의 법적 절차가 장기화되면서 뉴욕주 사법당국이 이례적으로 재판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권씨에 대한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국에서 궐석 재판을 받고 있는 신현성 공동 창업자와 현재 한국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한창준 차이 대표 사이의 ‘3각 공모’에 대한 한미 양국의 수사 및 재판 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권도형씨와 함께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피의자인 신현성씨는 유신정권의 실세였던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손자로,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이 고모부이며 홍석현 회장의 장남인 홍정도 중앙일보 부회장과 사촌간이다. 테라는 신현성씨의 이같은 후광에 힘입어 업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 검찰은 한창준씨가 수사의 핵심인 ‘테라-차이 관계’를 정확히 알려줄 ‘키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