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골프장 흑인 출입 길 터
아들, UGA 최초의 흑인 입학생
애틀랜타 거리 곳곳의 표지판, 마타(MARTA) 역, 그리고 학교 건물에서 우리는 '홈즈(Holmes)'라는 이름을 쉽게 마주한다. 이 이름 뒤에는 미 연방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승소하며 미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한 가문의 위대한 투쟁사가 담겨 있다.
홈즈 가문은 골프장과 교육계 모두에서 인종 통합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알프레드 '텁' 홈즈(Alfred “Tup” Holmes)와 그의 아들 해밀턴 홈즈 시니어(Hamilton Holmes, Sr.)는 각각 연방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며 후대를 위한 기회의 문을 열었다.
사건의 시작은 1951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알프레드 '텁' 홈즈는 친척 및 친구와 함께 바비 존스 골프 코스(Bobby Jones Golf Course)에서 라운딩을 하려 했으나, 공공 골프장 측은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이들의 입장을 거부했다.
1953년, 텁 홈즈와 골프 위원회는 애틀랜타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이 미국 공립학교의 인종 통합을 명령했지만, 그 판결이 골프장과 같은 다른 공공장소에까지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소송 과정은 험난했다. 악명 높은 인종차별 단체인 쿠 클럭스 클랜(KKK) 측 변호사는 소송 기각 신청을 냈고, 백인들은 홈즈의 집 앞을 지나가며 욕설을 퍼붓거나 창문으로 물건을 던졌다.
2년간의 지방법원 소송과 항소 과정을 거쳐 사건은 마침내 연방 대법원에 도달했다. 1955년 11월, 연방 대법관들은 애틀랜타 시가 공공 골프장에서 흑인의 이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애틀랜타를 넘어 전국의 해변, 도서관, 공원 등 모든 공공시설의 인종 통합을 이끄는 결정적인 선례가 되었다.
텁 홈즈가 장벽을 허문 지 6년 후, 그의 아들 해밀턴 홈즈 시니어는 교육계의 유리천장을 깨뜨렸다. 1961년, 해밀턴 홈즈 시니어는 친구 샬레인 헌터와 함께 조지아 대학교(UGA)에 입학한 최초의 흑인 학생이 되었다.
입학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해밀턴 홈즈 시니어는 고교 시절 전교 1등(Valedictorian)이자 학생회장을 지낸 의대 지망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UGA로부터 입학 거절을 당했다.
해밀턴 홈즈 시니어는 대학을 상대로 차별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 대법원은 다시 한번 홈즈 가문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법적인 승리가 곧 삶의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캠퍼스에서 학생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으며 인종차별적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홈즈 시니어는 UGA 졸업 후 에모리대 의대 최초의 흑인 학생이 됐으며, 이후 정형외과 전문의로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재 알프레드 '텁' 홈즈 골프 코스로 명명된 이곳은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과 자원을 통해 지역 사회와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현재 에모리 대학교 내 시설을 비롯해 애틀랜타의 여러 거리 표지판, 마타 역, 초등학교 등이 이들 가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해밀턴 홈즈 시니어는 54세, 텁 홈즈는 50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홈즈 주니어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애틀랜타 지역 지도자들은 오는 2월 25일 오후 6시 애틀랜타 히스토리 센터에서 홈즈 가문의 업적과 골프장 및 공공장소 통합을 이끈 대법원 승소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박요셉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