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빌라이저 의무화 검토했지만 美 판매차량에 명시적 요구 안 해"
"리콜 요구에도 '규정 없다'며 현대차·기아에 리콜 강제하는 것 거부"
"전적으로 규제의 허점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이자 편집위원인 헤더 롱은 10일 게재한 칼럼에서 미국의 10대들 사이에서 최근 몇 년간 놀이처럼 번지고 있는 현대차·기아 차량 절도의 책임을 당국의 규제 부실로 지목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기아 쏘울 승용차를 워싱턴 DC 경찰청 앞에 주차한 뒤 경찰 헬리콥터를 타고 취재에 나섰다며, 정작 돌아와 보니 경찰차 사이에 세워 둔 자신의 차를 누군가 훔치려고 시도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공개했다.
그는 "도둑들은 뒷유리 와이퍼를 뜯어냈다. 나중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를 통해 차량의 와이퍼 제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한다"며 "운전석에는 문을 따고 들어가려 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고, 뒷좌석 창문을 부수기 위한 상처도 여러 군데에서 확인됐다"고 당시 경험을 적었다.
칼럼에 따르면 워싱턴에서 지난해에만 1천여건의 차량 탈취와 6천800건 이상 차량 절도가 발생했다. 이는 2022년과 비교해 80% 넘게 증가한 수치다.
칼럼은 "이 같은 10대들의 정신 나간 현대차·기아 차량 절도 행위는 미국에서만 고유한 일"이라며 "캐나다와 유럽에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7년부터 캐나다와 호주를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점화 이모빌라이저 부착을 의무화했다"면서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이를 부착할 것을 자동차 제조사에 요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모빌라이저는 대개 차량 열쇠에 부착된 별도의 '칩 장치'(chip device)가 없으면 시동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간단하고 비싸지 않은 장치를 말한다.
칼럼은 "이렇기 때문에 미국의 2011~2021년식 현대차·기아 차량의 4분의 1에만 이모빌라이저가 부착된 것"이라며 "이 장치가 없으면 스크루 드라이버와 USB 케이블만 있어도 1분도 안 돼 손쉽게 차량을 훔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에서 지난해 1분기 기준 현대차·기아 차량 절도에 따른 보험 청구는 2020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천% 증가했다.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변호사 출신인 앨런 캠은 이와 관련해 "이것은 전적으로 규제의 허점이며,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NHTSA는 2016년 이모빌라이저 장착 규정 도입을 검토했지만, 그때 당시부터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량에 이모빌라이저를 요구하는 대신에 '자동차 제조회사가 이모빌라이저를 장착할 경우 캐나다의 기준과 유사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라는 변형된 규정을 도입하는 '이상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대차·기아 차량 절도 피해가 급증한 이후 전국 단위의 리콜 요구가 빗발치고 있음에도 당국에서는 '규정 없음'을 이유로 현대차와 기아에 리콜을 강제하는 것을 거부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칼럼은 비판했다.
칼럼은 현대차와 기아의 책임도 거론했다.
칼럼은 "두 회사는 소비자들과 2억달러 규모 합의에 도달했지만, 최소한 지난해 말까지 누구도 돈 한 푼 받지 못했다"면서 "이들은 도난 방지 업데이트를 제공하고 있지만, 범죄자들도 알다시피 이것으로는 근본적 결함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