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한국학교는 정말 자랑스런 학교"
애틀랜타 한국학교는 1981년 설립된 후 38년간 메트로 애틀랜타 지역 한국어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긴 역사를 자랑하지만 2013년 한국학교 사무실이 입주해 있던 한인회관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는 역경도 겪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도 한국학교가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것은 송미령(사진) 교장의 리더쉽과 이사진 및 한국학교 교직원들의 희생과 노고 덕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2013년 부임 후 6년동안 교장직을 맡고 있는 송미령 교장을 둘루스 소재 학교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불문학도... 한국서 교사 ·강사도
부임하자마자 사무실 화재 전소
"한국학교 시스템 이젠 궤도에"
"차세대 한국어 교사 육성 과제"
▲애틀랜타 한국학교에서 일하게 된 배경은
"한국에서는 성균관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이화여고 교사 및 청주사범대, 한성대, 한양대, 성균관대, 동의대, 한국방송통신대 등 여러 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했다. 그러던 중 교수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휴식을 취하던 중 남편이 조지아 대학교(UGA) 교환 교수로 발령을 받으면서 1998년 처음 미국에 오게 됐다. 한동안은 가정주부, 아이의 어머니로서 살아 갔다. 그러다 한국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던 지인이 한국학교 교사로 일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는 미국 생활을 오래하지도 않았고 풍토도 잘 몰랐기 때문에 교사로서 일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일단 고사한 후 어느정도 미국 사회에 대해 공부했다. 이후 2005년 처음 한국어 교육에 뛰어들었다. 한평생 해왔던 일이 교육이었기 때문에 교사 생활은 수월했다. 그러던 중 2013년 7월 한국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게 됐다"
▲일반 교사직과 교장직은 무게부터가 다를 것 같다
"아무래도 교사로 지냈던 때는 수업을 준비해서 그것만 전달하면 됐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교장이 되고 나서는 학교 운영을 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수업의 흐름, 교사, 재정, 대외활동 등 모든 부분을 총괄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책임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교무 업무를 3년간 맡았던 경험 때문에 학교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어 다행히 어느정도 이끌어 올 수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들었다
"첫 임기 때 고비가 왔었다. 한국학교 사무실이 있던 한인회관에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화재로 한국학교가 사용하던 공간이 전소됐었다. 나는 그당시에 한국에 있었는데 애틀랜타로 돌아왔을 때는 남아있던게 책상이랑 책꽂이 하나밖에 없었다. 한국학교는 학점 인증 기관으로 5년마다 정부에 갱신 신청을 해야한다. 화재사건이 있었던 그 해가 하필이면 갱신해야 하는 해였다. 화재사건으로 인해 자료가 대부분 소실 됐었기 때문에 자료를 다시 만들고 흩어진 자료들을 다시 모으는 작업을 해야했다. 임기 첫해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둘째 해도 만만치 않았다. 새로운 사무실을 찾아야 했고, 이사한 후에는 정리 및 사업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바쁜 일상이 계속됐다. 교장으로서의 첫 임기는 그렇게 끝이났다. 그래서 첫 임기동안 교장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끝내지 못했고 다시 한번 연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다시 교장으로 일했는데 이때 내가 원했던 것을 어느정도 이룰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을 이룰 수 있었나?
"졸업생들을 위한 동창회 설립 및 차세대 교사 배출, 한국학교 시스템 정립화 정도로 볼 수 있다. 한국학교 시스템은 교사들은 물론 이사회, 학부모회 등의 노력으로 어느정도 궤도 선상에 올려 놨다고 자부한다. 동창회는 3회째 진행해 오고 있는데 타주에 나가 있는 졸업생들이 많아 진행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내가 교장직에 물러나더라도 계속 진행되길 기대하고 있다. 차세대 교사 양성은 모든 한국학교의 숙제라고 볼 수 있다. 애틀랜타 한국학교는 이를 위해 차세대 교사 육성 워크샵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후대 교사 모집은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국학교를 운영해 오면서 가장 보람될 때는?
"학교의 보람은 역시 학생이다. 지금은 반을 맡고 있지 않지만 예전 교사 시절에는 졸업반을 가르쳤다. 한국학교 학생들의 경우 중간에 한국어 공부에 흥미를 잃고 중도하차 하는 경우도 꽤나 있다. 하지만 졸업반에 가까워 질수록 학생들은 한국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다. 어느 해인가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졸업하는 학생이 항상 그만두고 싶다고 칭얼거려도 자신을 끝까지 믿고 한국학교에 보냈던 부모님에게 감사한다고 전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있다. 그때 한국학교 교사라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었다"
▲새로운 사무실이 지어진다고 들었는데
"노아은행에서 부지를 기증해줘서 학교의 상징인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셨다. 학생 규모가 크다보니 학교 건물을 지을 수는 없어 학교 사무실을 짓도록 결정됐다. 세부적인 사항은 올해 발표될 예정이다. 어떤 규모로 지을 것인지, 재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사항에 따라 최종 개설일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6년간 교장으로 애틀랜타 한국학교를 이끌어온 소감은
"애틀랜타 한국학교는 정말 자랑스러운 학교다. 설립자 분들이 한국어 교육의 뜻을 품고 만든 학교로 그 뜻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애틀랜타 한국학교는 2세, 3세, 4세, 5세까지 꾸준히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를 알려나가는 독립기관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국어의 우수성을 알리고 이를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애틀랜타 한국학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인락 기자
애틀랜타 한국학교 제3회 동창회 당시 모습
애틀랜타 한국학교 정유근 전 이사장이 송미령 교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