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겨울은 낭만적이다. 도심은 화려한 조명의 빌딩숲과 스카이라인으로 ‘빛의 파티’가 벌어진다.
빅토리아 항구에서 크루즈를 타고 멋진 야경을 즐기다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영상 20도 내외의 따뜻한 날씨지만, 거리 곳곳에 설치한 산타클로스 장식과 대형 트리를 통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한껏 느낄 수 있다.
낮에는 동·서양 문화가 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한 감성이 돋보인다. 빈티지한 멋이 살아 있는 올드타운 센트럴과 대자연이 펼쳐지는 빅토리아피크까지, 홍콩은 낮에도 낭만이 흐른다. 홍콩관광청이 주관하는 ‘홍콩 로맨틱 겨울축제’를 찾았다.
빌딩숲 사이로 펼쳐지는 ‘빛의 향연’
세계적인 야경으로 꼽히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홍콩에 가면 꼭 봐야 할 도심 이벤트다. 매일 오후 8시부터 10여 분 동안 홍콩섬에 늘어선 40여개 초고층 빌딩에서 형형색색의 불빛이 교향곡에 맞춰 춤을 추는 장관이 펼쳐진다.
침사추이의 홍콩문화센터 광장, 완차이의 골든보히니아 광장, 빅토리아 하버 크루즈 등에서 관람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마천루가 정면으로 보이는 홍콩문화센터 광장이 가장 적합하다. 쇼 시작 20~30분 전부터 자리를 잡는 인파들로 북적댄다.
2004년부터 시작한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올해 더 특별하다. 중국 정부의 홍콩특별행정구 지정 20주년을 맞아 대규모 예산을 투자해 새롭게 디자인했다. 세계적인 조명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한 단계 진화된 레이저 쇼를 선보인다. 푸른 레이저 빔과 서치라이트가 빌딩 조명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교향곡이 절정에 달하면서 레이저 불빛이 현란하게 밤하늘을 수놓으면 관람객 사이로 함성이 터져 나오고 분위기도 한껏 무르익는다.
레이저 쇼가 끝나면 뒤편의 홍콩문화센터 벽면에서 ‘3D 펄스 쇼’가 진행된다. 눈, 얼음, 스노스톰을 주제로 용이 꿈틀대는 역동적인 3D 영상이 펼쳐진다. ‘3D 펄스 쇼’는 홍콩의 여름·겨울 축제, 설 축제 때마다 테마에 맞춰 매회 다른 영상을 연출한다.
‘3D 펄스 쇼’와 함께 문화센터 앞 시계탑에도 조명이 비치며 알록달록 물이 들기 시작한다. 광장 분수대 주변에 둘러앉은 관람객 위로 특수 장치에서 뿜는 눈이 흩뿌려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일년 내내 매일 오후 8시에 관람할 수 있다. ‘3D 펄스 쇼’는 28일까지 하루 5회 상영한다.
역사와 낭만을…올드타운 센트럴
셩완(上環)역에서 센트럴역을 잇는 올드타운 센트럴 일대는 홍콩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1841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에 승리한 영국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 최초로 발을 디딘, 홍콩의 근대 역사가 시작된 거리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됐을 때, 올드타운 센트럴은 거대한 문화 유적으로 남았다.
영국 식민지 시대를 상징하는 포제션스트리트에서 1840년대 대규모로 중국인들이 정착했던 타이핑샨 지역까지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이어지는 할리우드로드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노호(Noho), 서쪽에는 포호(Poho), 남쪽에는 소호(Soho)가 자리 잡고 있다. 아찔한 고층 빌딩 사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건물들은 홍콩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등 서로 상이한 문화가 한데 공존해 이질적이면서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포제션스트리트에 위치한 할리우드 공원부터 찾았다. 영국 해군기가 공식적으로 처음 게양됐던 장소지만, 지금은 중국식 정원으로 꾸며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포제션스트리트를 걸어 올라가면 이어지는 타이핑샨스트리트에는 옛날 사찰들이 즐비하다. 각 사찰마다 섬기는 신이 다르다. 시민들은 타이슈사원에서 행운을 빌기도 하고, 콴음사원에서 부를 기원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원은 포호 입구에 위치한 만모사원이다. 1847년부터 15년에 걸쳐 건립한,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 사원이다. 만모사원은 천상의 신을 섬기고, 전쟁의 신과 문학의 신을 찬양하며, 마을의 분쟁을 해결하는 장소로도 활용됐다.
홍콩 속 서양 문화를 느끼고 싶다면 할리우드거리가 제격이다. 동·서양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와 골동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길거리 담벼락마다 그래피티 벽화가 즐비해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다. 옛 타운하우스 벽화는 사진이 잘 나오는 명소로 유명해 관광객들 사이에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할리우드로드와 스퀘어스트리트 사이 계단에는 한국 아티스트 제바(유승백)가 참여한 액션스타 이소룡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마데라 할리우드 호텔 외벽은 메릴린 먼로, 찰리 채플린, 오드리 햅번 등 친숙한 영화 배우들의 대형 그래피티로 장식해 놓았다. 거리 곳곳의 브런치 카페에서는 유럽 관광객들이 한적한 오후를 즐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낮에 보는 홍콩의 스카이라인은 어떨까
낮에 보는 홍콩의 스카이라인도 색다르다. 홍콩에서 가장 높은 빅토리아피크에서는 홍콩섬과 구룡반도가 한눈에 ‘들여다’ 보인다. 야경도 좋아 밤낮 구분 없이 자연과 도심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홍콩에는 크게 4개의 등산 코스(홍콩트레일·월슨트레일·맥리호스트레일·란타우트레일)가 있다. 모두 중급 이상의 코스들이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빅토리아피크 전망대에서 루가드로드를 따라 홍콩 대학 방향으로 걷는 산책로는 초보자들도 쉽게 걸을 수 있다. 빅토리아피크 산자락 좁은 절벽을 따라 가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곳곳에 도심 풍경을 감상할 전망 포인트가 자리해 1시간30분 동안 걸으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오른쪽으로는 빅토리아 항구와 홍콩섬이, 왼쪽에는 푸른 잎이 무성한 숲이다. 잠시 숲을 등지고 고층빌딩이 꽉 들어찬 홍콩의 전경을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일정상 일몰은 볼 수 없었지만, 전망대에서 마천루 사이로 지는 해를 감상하며 한 해를 돌아보는 것도 꽤 낭만적인 경험이 될 듯하다.
<홍콩=이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