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를 사고 싶다가도 머뭇거리는 것은 비단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뭘 좀 알고 사야 하는데 4K, HDR, OLED 등 알파벳과 숫자로 된 약자가 뒤죽박죽 된 제품 사양을 읽다보면 뜻도 모르겠고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게다가 지금은 연말 샤핑 시즌도 아니다. 더 좋은 제품이 나온다고 하고, 때마침 전문 용어도 어렵고, 남들도 TV를 사는 타이밍이 아니니 그냥 연말까지 미룰까? 이런 저런 TV 구입과 관련한 고민들을 해결해 줄 Q&A를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지금 사야할까? 아니면 기다릴까?
어려운 문제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도어 버스터로 헐값에 나온 TV 쟁탈전을 벌이는 뉴스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면 기다려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전문가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소비자 전문 조사업체인 NPD그룹의 스테판 베이커 부사장은 “지난 2년간 TV를 산 적이 없다면 지금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초고화질 등 TV의 성능 개선은 표준이 되는 기술의 변화와 발맞춰 진행되는 것으로 2년의 시간이면 과거 표준이었던 기술이 퇴물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시장의 중심이 플랫 패널 모델로 옮겨질 2017년은 흥미진진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뭘 찾아봐야 하는가?
대개 TV를 사면서 초점을 두는 것은 해상도와 사이즈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적의 가격대는 500달러라고 와이어커터의 크리스 하이노넨 기자는 추천했다.
뉴욕타임스에 전자제품에 대한 추천 기사를 기고하는 그는 “비싼 돈을 줘야 살 수 있는 최상위 가격대 제품은 추천하지 않는다”며 “이보다 저렴한 중저가대 제품이라도 수년간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고 적절한 타이밍에 표준 기술이 너무 구식이 되지 않을 정도의 기간에 업그레이드하기에 적합한 장점이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해상도는 어느 정도를 고르나?
가장 많이 듣게 될 용어는 4K다. 1080p의 뒤를 잇는 표현으로 고해상도 TV와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4K는 울트라HD를 뜻하는 UHD와 유사하게 쓰이며 높은 선명도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4K라고 만사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이노넨 기자는 “TV만 4K인 것이지 방송되는 컨텐츠가 4K가 아니면 해상도가 원하는 만큼 높지 않다”며 스트리밍 4K 컨텐츠는 넥플릭스, 아마존, 두부(vudu) 또는 디렉TV의 일부 방송에서만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4K가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는 영상도 있다. 한꺼번에 많은 액션이 들어간 영상이나 폭발 씬 등이 포함된 부분은 원하는 만큼의 선명한 화질이 구현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점을 알아야 하나?
HDR(High Dynamic Range)은 지난해 출시된 4K TV 가운데 가장 진보된 기술로서 색감을 배가시켜 준다. 즉, 밝은 색상은 더 밝게, 어두운 색감은 보다 깊은 색감으로 보여줘 섬세한 느낌이 더해진다.
그러나 이것도 함정이 있으니 HDR 기능을 갖춘 4K TV라도 방송되는 컨텐츠가 여기에 따라주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수 있다. 즉, 컨텐츠 자체도 4K에 HDR에 맞는 것이어야지 4K이기만 하고 HDR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컨텐츠는 시청자가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을 뿐 TV만 비싸게 주고 산 꼴이 되기 쉽다.
O.L.E.D(organic light-emitting diodes) 기술도 자주 회자된다. 놀랄 만큼 얇고, 완벽한 색감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서 ‘미래의 기술’이라고 칭송받고 있지만 단점은 비싸다는 것. 55인치 기준으로 2,500달러 선이고, 65인치는 3,500달러까지 가격이 높다.
선택이 어렵다면 각 모델들이 제시하는 콘트라스트 비율(contrast ratio)을 체크하면 도움이 된다. 흰색은 얼마나 하얗게, 검정색은 얼마나 어둡게 구현되는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콘트라스트는 로컬 디밍(local dimming)과 풀 어레이 로컬 디밍(full-array local dimming)으로 구분되는데 단순히 로컬 디밍은 절대적으로 어두운 부분은 계속 어둡게, 환한 부분은 계속 환하게 표시되는 것이고, 풀 어레이 기술은 부분별로 상대적으로 다르게 환하기가 조절되는 것으로 한단계 진보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이즈는? 커브드는? 3D는?
첨단기술 전문매체인 CNET의 데이빗 캐츠마이어 기자는 “침실 기준으로는 최소한 40인치 이상, 거실 기준으로는 55인치 이상은 사이즈가 돼야 한다”고 추천했다.
화면의 좌우가 시청자를 향해 살짝 굽은(curved) TV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좋다고 광고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구매를 권하지는 않았다. 하이노넨 기자는 “제조업체들의 상술로 마케팅되고 있지만 실제 판매 실적은 형편없는 상황”이라고 이유 설명을 대신했다.
그렇다면 3D 입체 화면을 즐길 수 있는 기능은 어떨까? 뉴욕타임스는 커브드 TV와 마찬가지로 한때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됐을 뿐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기술은 아니라고 전했다.
▦TV를 사긴 해야 하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일반화된 마당에 과연 TV를 사야 할까? 전문가들은 반드시 TV로 봐야만 하는 컨텐츠가 있다면 구매를 권한다. 예를 들면, 스트리밍 서비스 채널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이나 ‘영 포프’(The Young Pope) 같은 작품은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TV를 사기로 마음을 굳혔다면 많은 리뷰를 읽어보고 실제로도 많이 살펴봐야 한다. 이때 광고성 글이나 매장의 화려한 데코레이션에 속지 말고 실제 저 TV를 내 집에 뒀을 때 어떨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류정일 기자>
화려하게 전시된 TV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유혹한다. 그러나 TV를 살 때는 예산 뿐 아니라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해당 기술이 몇 년이나 표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고려한다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