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유럽 등 제조사
잇달아 미국 내 기반 확대
삼성·LG 등 전자업계도
가전 공장 건설 검토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아니면 막대한 국경세를 내야 한다.”
오는 20일 45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최근 트위터에 남긴 한마디가 몰고 온 파장은 강력했다. 도요타 자동차가 멕시코에 생산공장을 짓기로 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이었지만 외국의 자동차 메이커는 물론, 기타 업체들과 미국의 기업들까지 긴장시켰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들로 최근 열린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미국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멕시코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에 대해 35%의 고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하자 포드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에 이어 도요타까지 납작 엎드린 모양세다.
▦자동차 제조사들 줄줄이 항복
도요타는 앞으로 5년간 미국에 1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이 회사 북미법인장 짐 렌츠가 9일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밝혔다. 트럼프가 트위터에 글을 남긴 지 나흘 만의 항복 선언이다.
포드는 같은 날 오토쇼에서 새 레인저 픽업트럭과 브롱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출시한다면서 이들 차종이 미국 미시간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포드는 지난 3일 멕시코에 16억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미시간공장에 7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FCA는 미국 미시간과 오하이오에 있는 2개 공장을 현대화하는데 10억달러를 투자하고 2,000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FCA는 또 관세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멕시코 공장의 소형차 생산 파트너를 찾는 계획을 미루기로 했다. 이 회사의 세르조 마르키온네 최고경영자는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미국의 수입 관세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면 “멕시코 생산이 경제적 타당성이 없어지고 그러면 철수해야 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FCA와 포드의 미국 투자 계획을 언급하면서 “포드 & 피아트에 고맙다!”고 트위터에 썼고 이런 불투명한 상황은 디트로이트 오토쇼 첫 이틀간 화제가 됐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 가운데 다른 제조사들도 미국 투자 계획을 부각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도 미국 앨라배마 공장의 SUV 생산을 확대하는데 13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혼다는 새 하이브리드 모델이 2018년부터 미국 내의 기존 공장에서 생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 2015∼2019년 70억달러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호무역에 반기 들기도
다만 트럼프의 위협에도 기존 계획을 고수할 것이라는 기업들도 여럿 있다. 멕시코에서 차를 만든다고 트럼프로부터 비난받았던 GM의 메리 바라 최고경영자는 회사가 트럼프에 대응해 기존 계획을 바꿀 일은 없다고 말했다. 바라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자문하는 CEO 그룹의 일원이지만 그는 차량을 어디에서 생산할지는 2~4년 전에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BMW도 멕시코에 2019년 새 공장을 연다는 계획을 유지할 것이라고 이 회사의 판매·마케팅 담당인 이언 로버트슨이 CNN에 출연해 말했다. 또 폴크스바겐도 멕시코 생산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으며 아우디의 북미법인장 스콧 커그는 멕시코 공장 건설 계획이 5년 전에 결정된 것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차량은 미국만이 아닌 세계로 수출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며칠새 발표된 미국에 대한 투자계획이 이미 잡혀있던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요타가 공표한 미국에 대한 100억달러 투자도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인공지능 연구나 공장설비 현대화에 들어가는 것으로 원래 계획하고 있던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한편 미국이 멕시코에서 자동차를 수입하지 않으면 미국의 대 멕시코 무역적자가 사라지지만 보호무역은 장기적으로 해로울 것이라고 CNN머니가 보도했다. 이 매체는 모건스탠리 보고서를 인용해 트럼프가 20~45%의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경제는 단기 성장에 탄력을 받지만 고통이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무역장벽 때문에 소비자 물가는 상승하고 기업들은 투자를 줄여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대기업도 초비상
지난해부터 멕시코 공장을 가동 중인 기아자동차를 비롯해 멕시코에서 TV·냉장고 등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기아차는 미국시장을 겨냥한 생산전략거점인 멕시코 공장이 피해를 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아직 현실화된 정책은 없다”면서도 “트럼프의 발언과 정책 기조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멕시코 북동부 누에보레온주의 주도인 몬테레이에 자리 잡은 기아차 공장은 지난해 5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올해 25만대를 생산해 60%는 북미로, 20%는 중남미로 수출하고 나머지는 멕시코 현지 시장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공약대로 높은 국경세를 매긴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포르테는 마진율이 낮은 준중형차로 약간의 관세만 붙어도 가격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삼성·LG 등 전자업계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미국에 가전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 상반기 중 미국 내 생산공장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는 테네시주 등 한두 곳을 공장 후보지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로 한 고위 관계자는 8일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관세 위협’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며 “미국의 가전 공장 건설을 포함한 여러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본토에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채산성을 비롯해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만큼 종합적으로 살펴본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에 수출하는 TV 대부분을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에서 만들고, 냉장고 등 가전제품도 멕시코 게레타로 기지에서 제조한다. LG전자도 멕시코 레이노사에서 TV를, 몬테레이에서 냉장고를 생산하고 있다.
9일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도요타자동차의 아키오 도요타 사장이 2018년형 캠리를 소개하고 있다. 도요타는 멕시코에 생산공장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압박에 노출되며 미국에 5년간 100억달러 투자 결정을 내리며 무릎을 꿇었다.
지난해 5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멕시코 북동부 몬테레이의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준중형 포르테 생산이 한창이다. 기아차는 올해 이곳에서 25만대를 생산해 이중 60%를 북미 시장에 수출할 계획인데 트럼프 당선인이 언급한 국경세가 현실화되면 경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