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당신과 나의 회화에 빛이 흐르는 동안
그늘진 지구 한 자리 나의 자리엔
살아 있는 의미와 시간이 있었습니다.
별들이 비치다 만 밤들이 있었습니다.
해가 활활 타다 만 하늘들이 있었습니다.
밤과 하늘들을 따라 우리들이 살아 있었습니다.
생명은 하나의 외로운 소리.
당신은 가난한 나에게 소리를 주시고
갈라진 나의 소리에 의미를 주시고
지구 먼 한 자리에 나의 자리를 주셨습니다.
어차피 한동안 머물다 말 하늘과 별 아래
당신과 나의 회화에 의미를 잃어버리면
나는 자리를 거두고 돌아가야 할 나.
당신과 나의 회화에 빛이 흐르는 동안
그늘진 지구 한 자리 나의 자리엔
살아 있는 의미와 시간이 있었습니다.
*조병화(1921~2003) 시인은 한국 현대 서정시를 대표하는 문인으로, 경기도 안성 출생입니다. 물리 교사로 재직하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 후, 2003년 작고 전까지 50여 권의 시집과 수많은 수필집을 남기며 '편운(片雲)'이라는 호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