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열명 중 꼴찌는 서열로 열 번째다. 한 계단 도약으로 아홉 번째에 올라섰을 때 흡족해 하던 마음이 여덟 번째로 들어서면 더는 모자람 없는 충족감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추진력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거기에 강단있는 박진감까지 더해지면서 넉넉한 실천력의 뚝심이 발휘되기도 한다. 스스로가 일구어 낸 자부심은 대리만족이나 대체만족과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자긍심의 가치와 긍지에 비견된 충동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눈 앞의 욕구에 차분하게 대처하는 능력도 동시에 얻게 될 것이다. 일등을 쟁취했을 때보다 한 단계를 올라서고 다시 한 단계를 짚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음미해 가며 행복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행복에 잠길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맑은 하늘에 구름이 몰리듯 밀려들 때가 있다. 자의적이기 보다 타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주 접해보지 못했던 상황이라 어떠한 저의가 배경으로 작용했는지 의아심을 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리고 말지만, 세상은 멀쩡한 사람들을 꼴찌로 몰아세우는 모의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언뜻 비춰질 때가 있다. 스스로 우월하신 분들이 특정한 한 사람을 꼴찌로 자처하도록 내몰고 있는 딱한 경우를 만나게 되는 일도 있다. 타의에 의해 외톨이 꼴찌로 내몰리다 보면 꼴찌의 변명이 거침없이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매인 데도 없음이요 의지할 데도 없는 홀로 인 사물이 측은해 보이는 단신 공간에 남겨진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지만 그렇게 노골적인 차별을 생각없이 감행해야 하는지 어찌 쓸쓸해지는 마음을 부인 할 수 없게 된다. 속담에 ‘자신을 아는 사람은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했다. 한계와 부족함을 알고 있기에 먼저 나를 성실하게 세워놓으면 남을 탓하지 않게 되리라.
지금 이 나이에도 생활반경 구석구석에 미칠만큼 제대로 철이 들었는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이긴 하지만 철 없었던 시절에는 꿋꿋하게 일등을 추종했었다. 일등이란 자리는 모든 분야에서 남보다 우세하다고 여기는 우월감의 병폐를 안고 있음을 철이 들어가면서 발견하게 된 것에도 감사를 드리게 된다. 유난히 점수에 집착했던 것 같다. 일등에서 밀려나면 몇 밤이고 밤잠을 포기하면서까지 다시금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기만은 성질 부린다고 일등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탓에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 같다. 알고 보면 일등을 고수하려는 집착은 어리석음의 발로요 고통의 시작이다. 살아가면서 일등이란 타이틀을 굳게 사수해내기란 쉽지 않음은 물론이요 견지 세력을 의식하면서 일등을 유지해 낸다는 것은 자신을 엄폐 시키는 첩경으로 접어든 셈이다. 꼴찌는 계속 올라갈 수 있는 여분의 한가로움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기에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해서 주어진 경황의 여백을 보유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사람들이 우러러볼 것 같은 일등은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강등 기회만 기다리고 있는 자리다. 개인의 대처 능력을 넘어 긴장과 혼란의 증폭만 가중될 수 밖에 없음이요 격심한 고통과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만 기다리고 있기에 까마귀 호통으로 망신살 뻗치는 일만 남게 된다.
자연계 생물들이 환경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개체나 다른 종들 사이에 벌어지는 상호작용 또한 생물 개체수가 공간이나 먹이 양에 비하여 월등하게 많아지면 서로 맞서 겨루게 된다. 같은 목적을 두고 이기거나 앞서야 한다는 경합으로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생들의 세상살이 또한 경쟁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서기 위해, 계속 경쟁력을 부추기고 요구하고 있다. 과당경쟁, 독점경쟁, 적통경쟁의 소용돌이에 세상은 방향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미궁에서 서성이고 있다. 일등을 쟁취하기 위해 고지를 향해 무조건 달리다 보면 인생의 참 행복을 맛보지 못한 채 생의 종착역에 도착하게 될 우려가 크다.
앞선 걸음이든 뒤따르는 걸음이든 등수에 연연하지 않으며 분명한 목적을 향한 꿋꿋한 걸음으로 속도감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꾸준하게 달려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일등도 꼴찌도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올인하는 삶이라면 한 세상 잘 살아온 것일 게다. 이 나이에 들어선 지금은 마냥 꼴찌 자리가 좋다. 더는 내몰릴 걱정도 없음이요 비키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없음이라서. 중간에 속하다 보면 올라갈 길과 내려갈 갈림 길에서 계속 위를 바라보아야 할지 제자리 걸음을 해야 할지 가슴앓이로 고심하는 일이 대두될 것이다. 꼭대기 고지는 수비 점령이든, 무혈 점령이든 혈기왕성 젊은 기운이 창창할 때 가능한 일이다.
나이가 깊어갈수록 지혜롭게 살아갈 방도를 택해야 평안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꼴찌의 변명으로 삼았던 ‘영원한 것은 없다’는 잠언서 말씀에 새삼 노년의 삶을 추스르게 된다. 늦여름과 초가을이 곁 눈짓을 나누는 계절의 길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