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국 방문 때 친구들과 강남의 한 막걸리 양조장(Brewery)에서 만남을 가졌다. 매장안 눈에 보이는 곳에서 제조해 바로 내놓은 막걸리는 갓 구워 나온 핫 베이글처럼 그 후레쉬한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분위기도 젊은 시절 즐겨찾던 골목길 허름한 선술집과는 달리 대로변 큰 건물에 자리잡고 있으며, 실내장식은 모던하고 화려했다.
막걸리 한 통 가격은 9,000원. 한국내 일반식당이나 주점의 2배 가격이지만 미국에 비한다면 착한 가격이다. 이 술집에서는 주문할 때 1인당 12,000원에 2시간 동안 2병씩 무한대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옵션이 하나 더 있다.
술 좀 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웬만한 성인 남자들은 대개 막걸리 1통 이상은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세컨드 옵션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더구나 내 친구들은 모두 한 때 막걸리 2통을 쏟아 부은 냉면그릇을 원샷했던 추억이 있는 주당들이다.
이젠 나이도 있고 담소나 나누면서 천천히 적당히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간만에 만난 친구들의 호기를 거스를 수 없었다. 주문하자마자 나온 술은 빠르게 잔에 채워지고, 몇 순배 거듭 돌자 어느 순간 자연스레 몇 병을 마셨는지 놓쳐 버릴 지경이었다. 누구 하나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있었다니 대단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마지막 1분여를 남겼을 때가 특히 가관이었다. 남은 술을 재빨리 잔에 채우고 서둘러 최후의 2병을 주문했다. 야구로 치면 아슬아슬한 슬라이딩 세이프였고, 미식축구로 치면 따라붙는 수비수를 달고 터치다운을 향해 달리는 미친 질주였다. 그제서야 숨을 고르고 환호하는 관중에게 한 손을 들어 화답하듯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며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정된 시간에 무제한의 술을 리필해 마시려 했던 상황이 마치 유한한 삶 속에서 끝없이 욕심을 추구하는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도, 이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날의 객기가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삼일을 시름시름 앓아 누워 있다가 겨우 회복한 몸이었지만 이 정도의 건강이 그저 감사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그 시절을 재현했다는데 한 편으로 기쁘기도 했다. 막걸리는 언제나 추억을 낳는다.
<폴 김 재미부동산협회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