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otten Korean war - 잊혀진 한국 전쟁)
최선준 원로목사
1950년 6월25일 너무나도 평화롭고 고요한 일요일 새벽 4시에 북한 공산주의자 김일성은 소련제 T-34탱크를 242대나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남한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킴으로 우리 민족사에서 최대의 비극이었던 동족상잔간에 말과 글로써 다 형용못할 참혹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생겼는바, 14만여명의 고귀한 전사자와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미망인, 아빠와 엄마를 잃은 수많은 전쟁 고아들을 낳게 하였으며, 또 전 국토가 전쟁의 상흔으로 글자 그대로 초토화가 되고야 말았다.
그러나 너무나 모질게도 끈질긴 우리 대한민국은 3년동안 치루어진 전쟁의 잿더미 가운데서도 결단코 좌절과 낙담하지않고 기여코 분연히 다시 일어나 7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인들이 경이롭고 부러워할만치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대국으로 우뚝서게 되었음을 생각할 때 너무나도 감격과 경탄함에 정말로 크게 기쁘지 않을수 없다.
3년동안 전쟁을 치루는중 풍전등화와 같은 큰 위락에 처하였을적에 UN의 16개 국가에서 참전한 젊은 군인들은 오직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대한민국의 땅에서 고귀한 피를 흘렸음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 젊은 군인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될줄로 믿는다.
특별히 미국 군인들은 전사자 5만4,246명 또 10만3,284명의 부상자, 그리고 실종자 8,177명은 유해조차 아직까지도 찾지를 못하였다.
국군 희생자가 645,000명에 비해 무려 27% 나 된다. 이처럼 많은 미군들이 한국땅에서 희생 당하였다. “자유는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Freedom is not Free) 고 그 누구가 말했던것을 새롭게 기억나게 한다. 워싱턴 DC 한국전쟁 기념관 입구에 새겨진 말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와 그들의 국민을 지키기 위해” 미국은 자유를 지키고자 연 1백 789,000명의 군인을 보내 3년동안 전쟁을 치루도록 도왔었다. 미국 정부는 전쟁의 포성이 멈춘지 70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막대한 경비를 들여가면서 남,북한에서 유해발굴을 계속하여 한사람의 유해라도 더 발굴하여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고자 힘쓰고 있음도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You are not forgotten-조국은 당신네들을 잊지 않는다)
나의 장인 되시는 (고)박영화 이등중사님께서는 대한민국이 전쟁으로 위락에 처하였을때에 젊음을 초개와 같이 조국의 제단에 젊음을 바쳐서 국군장병으로 어느 고지에서 전쟁을 치루는중 전사하셨는데 지금껏 어느 산하에서 전사를 하였는지 그 유해를 도무지 찾을길 없어 고국을 방문할때마다 동작동 국립 현충원 지하에있는 위패 봉안소를 방문하어 비록 차디찬 벽에 쓰여져있는 이름과 계급장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묵념을 드린후 그 위패 아래에다 한송이 꽃을 바친다.
그리고는 현충원 봉안소에 그 수많은 전사자분들의 위패를 돌아 보면서 6,25 전쟁이 낳은 참혹한 비극을 떠올리며 다시한번 국가와 민족의 소중함과 자유와 평화의 가치가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귀함을 새삼 되짚어 본다.
나의 장모님은 전쟁 미망인이 되셨으며, 아내는 태중 4개월 되었을적에 부친께서 전사 하심으로, 혈혈 단신 유복녀로 태어나 단 한번도 아버지를 불러본적이없으며 생전의 아버지 모습의 사진 한장 없이 긴긴 세월을 보내어 왔으며, 국가유공자 자녀로 지금껏 지내오고 있다.
수많은 젊은 군인 용사들은 오로지 자유와 평화의 대한민국을 붉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는 굳은 일념과 나라를 사랑하는 충성심의 그 뜨거운 열정으로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맞따뜨려 싸울때에 그 국군 용사들은 마땅한 무기나 총칼도없이 맨몸으로 대항하여 목숨을 다하여 싸울때에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았는바, 이제 그 참혹하였었던 전쟁이 멈추어, 덧없는 7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북한공산주의자들을 용서할수는 있어도(Forgive) 그렇다고 그 공산주의자들이 동족의 가슴에 총과 칼을 들이 대었던 그 천인공노할 만행을 도저히 잠시도 잊을수는 없다(Forget)
젊음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신 님들의 고귀한 희생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속에 우뚝서 영광스런 나라를 이룸에 튼튼한 디딤돌이 되어 주셨기에 전쟁에서 산화하신 님들께서는 우리 조국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어야하며, 인간들이 사용하는 언어로는 다 표현할수 없었던 그 아픔과 전쟁의 참혹한 비극의 역사는 자자손손 후예들에게 결단코 잊거나 저버리지 말고 영원히 6,25 전쟁을 상기토록 전해 주어야 하며, 다시는 그런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를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게 그 어떤 국가의 지상과제중 최우선임을 일깨워 주어야 하겠다. 인류역사에서 반드시 국방력의 튼튼한 힘이 뒤바침이 될 때만이 전쟁재발의 억지력이 되었으며, 국민들이 총화단결을 하였을때 흥하고 번영하였음을 인류 역사는 오늘도 웅변해 주고 있다.
6,25 전쟁의 포성이 멈춘지 어언 70년이 지나갔다고 결단코 잊혀진 전쟁(For gotten) 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다.
역사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기초석이어야한다. 망각은 동일한 비극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32:7> 는 말씀이 생각이 난다. 이스라엘은 많은 전쟁을 치루었기에 고난의 역사를 이어 왔었는데 조상들께서 조국을 어떻게 지켜 왔는가를 결코 잊지 말것을 당부하였던것처럼 우리네 민족도 6,25 전쟁을 치룬 역사를 자자손손 잊지를 말것을 계속하여 들려 주어야 하겠다.
(1950년 6월25일-1953년 7월27일 휴전-1,129일임)
우리 민족은 유감스럽게도 어떤 사건들을 너무 빨리 잊어 버리기를 잘합니다(my country forget very guickly past incidents)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풍요는 호국용사와 순국선열의 피와 땀으로 이룩하였음을 도무지 잊지를 말고 조국강산을 품에 안고 고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한결같은 맘으로 애국애족 하여야 하겠다. 70년의 세월속에 같은 혈육의 민족이건만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겹겹으로 쳐진 통한의 155마일 38선인 휴전선! 저 녹슨 철조망을 모두 거두어 평화의 종을 만들어 북녘땅 방방 곳곳에 자유의 종을 만들어 어서속히 평화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하여야겠다. 우리의 소원은 오늘도, 내일도, 또 그 다음날도 오직 자유와 평화롭게 통일되는 그날이 아니던가요...
변변한 무기하나없이 맨주먹과 피와 땀으로 참 군인정신을 우리가슴에 각인 시키고 순수한 조국애와 숭고한 희생을 조국의 제단에 바치시고 산화하신 전사자님들이시여!
이제 모든 시름 떨쳐 버리시고 나날이 발전하여 세계를 향하여 뻗어나가는 대한민국, 자유와 평화롭게 남북이 통일되는 그날을 지켜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님들께서 그토록 이루기를 염원하셨던 남과 북의 완전 평화통일의 대업을 저희들이 기필코 이루어 성스러운 민족의 제단에 바치리이다.
역사는 수없이 흘러가더라도 님들께서 그 치열하였던 6,25 전쟁중에 나라를 끝까지 지키다가 산화하신 그 고귀하신 희생정신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길이 길이 보존하오며 그 애국심은 결단코 잊지 않으리이다(will not forget)
또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세계 16개 국가에서 참전하여 전사와 부상을 당하신 UN군들의 희생도 저희들은 영원히 잊지 않으리이다.
1950년 7월1일 미군은 한국에 첫발을 디딘 이후 3년 1개월간 전쟁을 치루면서 특히 우리 모두를 감동시킨 것은 미국 장군의 아들들! 142명이나 참전하여 그중에 35명의 군인들이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고, 장관의 가족도, 미8군 사령관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즉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 중위는 1952년 미3사단의 중대장으로 참전하였다. 대통령의 아들이 남의 나라에서 참전하여 전사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미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의 아들 샘 워커 중위는 미 제24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두 부자(父子) 가 6,25 한국 전쟁에 헌신한 참전의 가족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었던 벤 플리트 장군도 한국전에 참전하여 사단장, 군단장, 8군 사령관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의 아들 지니 벤 플리트 2세도 한국전에 지원하여 B-52 폭격기 조종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미 대위는 1952년 4월4일 새벽 전폭기를 몰고 평안남도 순천 지역에서 야간에 출격하여 공중 전투중 괴뢰도당의 대공포에 전사했다.
지미 대위가 처음 참전을 결심했을 때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 모두의 심금을 엄청 크게 울린다.
“ 어머니!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한국전선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이제 저도 힘을 보탤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께 싸우는 저희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요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
그 편지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
1950년 7월1일-우리 국민이 또 잊지않고 기억해야할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시 미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신임 소위 365명중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희생당한 장교가 110명(그 중에 41명 전사) 이나 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들은 세계를 가슴에 품고 대망을 펼치기 위해 사관학교에 입교했는데 임관하자말자 한국전선에서 꽃다운 젊은 나이에 희생되었다.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그들의 통한! 세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쳐준 군인 용사들..
그네들이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 하셨음에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맘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되겠다.
공산사회주의 북한 김일성 일가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규탄하고 붉은 무리의 적들로 인하여 고귀한 생명의 목숨을 잃은 그네들은 진정 자유의 수호신이되어 자유 대한민국을 영원히 지켜 주리라 확신합니다.
삼가 옷깃을 여밀어 님들의 묘비에 한송이 꽃을 바치리이다.
최선준 원로목사
애틀랜타, 새 언약교회
제13, 16기 민주평통 애틀랜타 자문위원 역임
현, 제21기 민주평통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