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행복한 아침] 빈말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7-19 08:10:41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김정자(시인·수필가)   

 

한인마트에서 커피타임을 가진 지 해를 넘긴 분을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가볍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는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나누면서 그냥 손 한 번 멋쩍게 흔들고 눈도 살갑게 마주 치지 못하고 돌아서게 되었다. 알고 지낸 시한의 분량 만큼 공백기간이 길었던 탓이라 하기엔 왠지 발걸음 떼기가 무거웠던 날이었다. 자주 마주하지 못한 동안의 낯설음이 만든 거리감이라 밀어붙이지 못하고 나도 몰래 전화기를 잡고 밥 먹자고 날을 잡으려 했더니 지금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있다는 답신이다. 마켓에서 아예 약속을 했어야 했는데. 사는 곳이 한인타운과 거리가 있는 편이라 사먹는 밥에 익숙한 편이 아닌 탓으로 돌린다. 인사성에 거치는 약속은 어찌 결례같은 느낌 탓에 쉽게 약속을 서둘지 않았던 탓도 있으리라. 진솔한 결론은 밥 한 번 먹자는 말 만큼이나 빈말처럼 보이는 말을 흘리지 말아야지 다짐해 왔던 터라 두서없이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말이 되고 말았다. 빈말의 공허함을 생각없이 반복하고 싶지 않음을 감출 수 없음이라서.

직장이나 단체에서도 가장 많이 남용되는 빈말이 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복창이다. 어쩌면 말의 인플레이션이 만든 처참한 최악의 막다른 길목에서 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어쩌면 최선이란 본래 지닌 뜻을 되새겨보려는 안간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냥 좋아서 애착을 가지고 자주 사용하는 것은 아닐 터인데 막다른 골목임을 깨닫는 순간, 돌아설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면 ‘막다른 골목에 든 강아지가 호랑이도 문다’는 속담처럼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로 남발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되다 보면 애틋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란 뜻 없이 실속 없이 남발된 나머지 진실된 지정이 퇴색되기 마련이요 빈말로 추락해버리기 십상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지나친 칭찬이 실린 빈말을 경계하게 되었다. 빈말이 삶의 수단으로 오용된지도 오래 시간이 흐른 터였기에.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예쁘다는 말보다 착하게 생겼다는 칭찬을 들어온 터라 미모에 관한 과한 공치사를 듣게 되면 마치 오작동 된 스피커의 날카로운 소음같이 들리는 순간이 있다. ‘행복한 아침’ 란에 실린 글을 읽으시고 빈치사를 듣게 되면 빈 동굴에서 울리는 굉음같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 오랜 독자분들 중에는 날카로운 평론을 주시는 분도 계신다. 오고 가며 만나 뵐 때마다 이번엔 어떤 꿀단지를 안겨주실지 기대가 기웃거리곤 한다. 오히려 부담스런 칭찬보다 매섭고 예리한 결함을 진심 어린 도움 말로 경종삼아 조언으로 주시는 충고를 바램하며 기다림하게 된다. 빈말 칭찬도 남발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함부로 남용하는 경지로 들어서게 된다. 사람만 구차하게 만든다. 빈말은 식은 밥덩이 만도 못하다 했다. 빈말이 도를 넘어섰다 하면 대형사고 유발로 들어서게 된다. 빈말은 속 빈 생각이 만들어내고, 그 생각은 서슴없이 해대는 행동을 만든다. 빈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입만 열었다 하면 빈말 투성이의 발언만 해대는 인격체로 점철돼 버리고 종국엔 빈말 인생이란 운명을 스스로 만든 셈이 되고 말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 따로 없음이다. 빈말 특징은 책임감이 결여된 발언으로 진정성을 가릴 수 없을 뿐더러 사람에 대한 신뢰성 농도가 부정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해서 빈말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보다 혹여 빈말로 던져버린 칭찬에까지 진심이 가려지거나 희석되지 않도록, 자조하며 애써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된다.

습관처럼, 인사치레 혹은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말을, 지켜지지 않을 약속의 말들을 아무런 걸림체 없이 함부로 기세당당 허풍치듯 흰 소리를 내뱉게 된다. 빈말을 빌미삼아 결혼에 골인하는 사람, 빈말을 이용해서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사람, 빈말 구사 능력이 뛰어나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이 실존하는 확률 포인트 퍼센트가 높을수록 세상은 고르지 못할 뿐 아니라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빈말이 생성되는 학술적 견해와 사회적 흐름의 변천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연구되고 바로 잡아가야 할 부분들이 산재해 있는 현실이지만 나이든 아낙은 빈말로 듣게 되는 칭찬까지도 그리 유쾌하지 않을 뿐더러 바늘 도둑 소도둑 되는 경지가 조심스러워지는 편이라 목적이 좋은 빈말이라도 삼가하자는 쪽이다. 번지르르한 속이 빈 칭찬이 양산되다 보면 사회적 신의는 추락하고 말 것이다. 말은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우리말이 훼손되어가고 한글을 향한 배려가 흐려지고 있다. 거기에 빈말도 함께 깨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말의 소중한 용도가 상실된다면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자각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근거 없는 외래어와 접목된 말이며, 무작정 말장난처럼 생성되는 줄임 말이나 거기에 빈말까지 거두어 들이며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힘을 합쳐야 할 때를 놓쳐 버린 건 아닐까 싶은 것은 빈말이 삶을 피폐로 추락하게 만드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 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아서이다. 한인 사회에서 서로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의 밑바탕은 한국적 향수가 저변에 자리하고 있어 민족 정서 테두리 안에서 표현과 이해가 한계점 안에서 작용되고 있기에 서로 대화라는 길을 열어놓고 소통하며 한인이라는 합일된 시공간에서 어우러지고 있기에 우리 말에 손색이 가지 않는 범위안에서 소통의 길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 가득하다. 빈말은 아예 곁눈질도 하지 말아서 아름다운 우리 말을 가꾸어 가는 민족 정서를 잃지 않는 이민자의 길이 닦여지기를 마음을 다해 기원 드린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 아침의 시] 날의 이야기
[이 아침의 시] 날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 고영민  주말 저녁 무렵아내가 내민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러밖에 나왔는데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랐다영락없는 내 어머니였다돌아가신 지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옐프 전국 1위 식당
[안상호의 사람과 사람 사이] 옐프 전국 1위 식당

첫날은 허탕을 쳤다. 미리 주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은 둘인데 주문 26건이 밀려 있었다. 지금 주문하면 한 시간 반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25센트 동전 하나에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