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한인마트에서 커피타임을 가진 지 해를 넘긴 분을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가볍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는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나누면서 그냥 손 한 번 멋쩍게 흔들고 눈도 살갑게 마주 치지 못하고 돌아서게 되었다. 알고 지낸 시한의 분량 만큼 공백기간이 길었던 탓이라 하기엔 왠지 발걸음 떼기가 무거웠던 날이었다. 자주 마주하지 못한 동안의 낯설음이 만든 거리감이라 밀어붙이지 못하고 나도 몰래 전화기를 잡고 밥 먹자고 날을 잡으려 했더니 지금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있다는 답신이다. 마켓에서 아예 약속을 했어야 했는데. 사는 곳이 한인타운과 거리가 있는 편이라 사먹는 밥에 익숙한 편이 아닌 탓으로 돌린다. 인사성에 거치는 약속은 어찌 결례같은 느낌 탓에 쉽게 약속을 서둘지 않았던 탓도 있으리라. 진솔한 결론은 밥 한 번 먹자는 말 만큼이나 빈말처럼 보이는 말을 흘리지 말아야지 다짐해 왔던 터라 두서없이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말이 되고 말았다. 빈말의 공허함을 생각없이 반복하고 싶지 않음을 감출 수 없음이라서.
직장이나 단체에서도 가장 많이 남용되는 빈말이 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복창이다. 어쩌면 말의 인플레이션이 만든 처참한 최악의 막다른 길목에서 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어쩌면 최선이란 본래 지닌 뜻을 되새겨보려는 안간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냥 좋아서 애착을 가지고 자주 사용하는 것은 아닐 터인데 막다른 골목임을 깨닫는 순간, 돌아설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되면 ‘막다른 골목에 든 강아지가 호랑이도 문다’는 속담처럼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로 남발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되다 보면 애틋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란 뜻 없이 실속 없이 남발된 나머지 진실된 지정이 퇴색되기 마련이요 빈말로 추락해버리기 십상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지나친 칭찬이 실린 빈말을 경계하게 되었다. 빈말이 삶의 수단으로 오용된지도 오래 시간이 흐른 터였기에.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예쁘다는 말보다 착하게 생겼다는 칭찬을 들어온 터라 미모에 관한 과한 공치사를 듣게 되면 마치 오작동 된 스피커의 날카로운 소음같이 들리는 순간이 있다. ‘행복한 아침’ 란에 실린 글을 읽으시고 빈치사를 듣게 되면 빈 동굴에서 울리는 굉음같이 들리는 경우도 있다. 오랜 독자분들 중에는 날카로운 평론을 주시는 분도 계신다. 오고 가며 만나 뵐 때마다 이번엔 어떤 꿀단지를 안겨주실지 기대가 기웃거리곤 한다. 오히려 부담스런 칭찬보다 매섭고 예리한 결함을 진심 어린 도움 말로 경종삼아 조언으로 주시는 충고를 바램하며 기다림하게 된다. 빈말 칭찬도 남발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함부로 남용하는 경지로 들어서게 된다. 사람만 구차하게 만든다. 빈말은 식은 밥덩이 만도 못하다 했다. 빈말이 도를 넘어섰다 하면 대형사고 유발로 들어서게 된다. 빈말은 속 빈 생각이 만들어내고, 그 생각은 서슴없이 해대는 행동을 만든다. 빈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입만 열었다 하면 빈말 투성이의 발언만 해대는 인격체로 점철돼 버리고 종국엔 빈말 인생이란 운명을 스스로 만든 셈이 되고 말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 따로 없음이다. 빈말 특징은 책임감이 결여된 발언으로 진정성을 가릴 수 없을 뿐더러 사람에 대한 신뢰성 농도가 부정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해서 빈말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보다 혹여 빈말로 던져버린 칭찬에까지 진심이 가려지거나 희석되지 않도록, 자조하며 애써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된다.
습관처럼, 인사치레 혹은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말을, 지켜지지 않을 약속의 말들을 아무런 걸림체 없이 함부로 기세당당 허풍치듯 흰 소리를 내뱉게 된다. 빈말을 빌미삼아 결혼에 골인하는 사람, 빈말을 이용해서 주변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사람, 빈말 구사 능력이 뛰어나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이 실존하는 확률 포인트 퍼센트가 높을수록 세상은 고르지 못할 뿐 아니라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빈말이 생성되는 학술적 견해와 사회적 흐름의 변천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연구되고 바로 잡아가야 할 부분들이 산재해 있는 현실이지만 나이든 아낙은 빈말로 듣게 되는 칭찬까지도 그리 유쾌하지 않을 뿐더러 바늘 도둑 소도둑 되는 경지가 조심스러워지는 편이라 목적이 좋은 빈말이라도 삼가하자는 쪽이다. 번지르르한 속이 빈 칭찬이 양산되다 보면 사회적 신의는 추락하고 말 것이다. 말은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우리말이 훼손되어가고 한글을 향한 배려가 흐려지고 있다. 거기에 빈말도 함께 깨춤을 추고 있는 형국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말의 소중한 용도가 상실된다면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자각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근거 없는 외래어와 접목된 말이며, 무작정 말장난처럼 생성되는 줄임 말이나 거기에 빈말까지 거두어 들이며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힘을 합쳐야 할 때를 놓쳐 버린 건 아닐까 싶은 것은 빈말이 삶을 피폐로 추락하게 만드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 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아서이다. 한인 사회에서 서로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의 밑바탕은 한국적 향수가 저변에 자리하고 있어 민족 정서 테두리 안에서 표현과 이해가 한계점 안에서 작용되고 있기에 서로 대화라는 길을 열어놓고 소통하며 한인이라는 합일된 시공간에서 어우러지고 있기에 우리 말에 손색이 가지 않는 범위안에서 소통의 길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램이 가득하다. 빈말은 아예 곁눈질도 하지 말아서 아름다운 우리 말을 가꾸어 가는 민족 정서를 잃지 않는 이민자의 길이 닦여지기를 마음을 다해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