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되면 감수해야 될 일이 있다. 편하게 나다니며 사람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던 자유는 이제 포기해야 한다. 전에 다니던 생맥주 집, 피자 가게에 한 번 가고 싶어도 움직이면 ‘행차’가 된다. 민폐와 그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 자연히 일반 시민과 평소 오가던 지인들과의 교유가 어렵다. 대신 측근이나 늘 보는 가족 등 한정된 사람들이 친 막 안에 머물게 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이 버블을 터뜨리고 나와 바깥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미국과 한국의 사정이 다르지 않다. 청와대를 ‘감옥’이라고 했던 한국 대통령이 있었던 반면, 트루만 대통령은 백악관을 ‘거대한 백색 감옥(Great White Jail)’이라고 불렀다.
레이건 대통령에게는 트로이카로 불리던 측근 그룹이 있었다. 나중에 재무장관, 국무장관 등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 마이크 디버 비서실 차장, 법무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에드윈 미스가 곧 그들이다. 이들이 당시 권력의 막강 실세들. 하지만 이들 세 사람은 의견이 맞지 않는 일이 흔했다. 공개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히고 논쟁했다. 대통령은 이런 다양한 견해를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
재선 후에는 달랐다.
레이건 대통령과 스펠링은 같았으나 발음을 달리했던 리건 비서실장 한 사람이 백악관 권력을 장악했다. 대통령의 언로를 틀어 쥔 것이다. 다양한 정보, 다른 견해가 전달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이 때 터졌다. 아야톨라 체제에 들어선 이란에 금지된 무기를 판매하고, 그 돈으로 니카라과 좌익 정부에 저항하는 반군에게 비밀리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 특별 조사위원회가 출범하고, 의회 청문회가 이어지는 등 이 때문에 미국 정치권은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미국의 대통령 통치술을 연구하는 정치 학자들은 이 케이스를 측근 정치의 성공과 실패를 명확하게 구분해 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언로가 막히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이 때의 최측근은 존 수누누 비서실장. 그의 허가 없이는 대통령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부시 대통령은 가족들의 여름 저택이 있는 메인 주 케네벙크포트에 사서함을 열었다. 각료 등 주위에 이 사서함의 존재를 알렸고, 여기로 오는 서신은 그가 직접 처리했다. 이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그는 비서실장을 해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가지고 있던 블랙베리 폰을 기억할 지 모르겠다. 보안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사용하던 이 전화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았으나 그는 블랙베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전화기 사용에 관한 제한 규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계속 사용함으로써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의 소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윤색되지 않은 민심을 전해 듣는 통로가 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던 맥 맥러티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필요할 때면 잔혹할 정도로 정직한 그의 성품’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통령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인의 장막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스 맨들의 버블 안은 거의 늘 긍정적이고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대선은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듯하다.
인지력 저하 등의 문제로 후보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여전히 굳건하다. 일반 여론과는 거리가 있는 가족 등 측근들의 조언과 의견이 원인일 것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러다 만일 민주당 폭망 사태가 온다면? “권력은 측근이 문제”라는 소리가 미국서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