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부정적 감정이 담긴 사고체계의 하나다. 생존에 필요한 요인인 의심 역시 오래 전부터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우리의 뇌가 의심을 삶의 기본 모드 하나로 세팅해 놓은 이유다. 의심을 일으키는 뇌 영역은 뇌 안쪽에 위치한 변연계와 뇌 표면의 전전두엽 피질로 추측된다. 이 두 곳의 상호작용에 의해 의심이 생겨난다.
수렵 체집을 하던 원시인 뇌와 지금 우리 뇌 크기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다만 해부학적으로 뇌 표면의 주름살이 많아지고 더 쭈글쭈글해진 차이점은 보인다. 인간이 돌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석기시대부터 문명은 계속 발달해 왔으나 ‘의심을 일으키는 뇌신경 회로는 아직도 변하지 않고 일상생활에 계속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한 사람의 의심이 과도한 집착으로 이어져 사랑하는 대상을 잃게 만든 얘기다. ‘미국의 세익스피어’라 불리는 미국 자존심격인 19세기 문학자 ‘나타니엘 호손’의 단편, ‘반점(Birtth mark’)의 간결한 내용을 소개해 본다.
젊고 유망한 어느 과학자가 미모의 여성에게 프로포즈 한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아름다운 아내 얼굴에 나타난 한 반점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왼쪽 뺨 위 손가락 끝마디 크기의 아이 손모양 형태를 한 조그만 붉은색 반점이다. 그 반점은 요정이 만들어 준 마법의 힘을 가진 매력점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부려워 하는 아내의 자랑 거리다. 기분이 좋아 얼굴에 화색이 돌면 반점이 서서히 사라지지만 피로하고 창백한 얼굴엔 더 선명하게 보이는 특징도 보인다. 처녀 시절에는 뭇 사내들이 그 반점에 키스 한번 했으면 하는 희망 사항이었다.
완벽을 지향하고, 신비를 파헤치려는 과학자 남편의 열정은 자연의 어머니가 물려 준 아내의 반점이 자꾸 마음에 거슬렸다. 타인에게 매력적이고 섹스어필로 불리는 반점이 남편에겐 오히려 아내의 아름다움을 망치는 결핍과 오점이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 어느 날 남편은 용기를 내어 아내의 반점 제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아내는 처음에 제거에 반대했으나 남편이 집착에 못이겨 잠꼬대까지 하는 소리를 듣고 결국 반점을 없애기로 동의한다.
과학자 남편의 집착은 아내의 반점을 없애는 기술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반점의 뿌리가 아내의 심장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수술은 포기하고, 약물 발견에 착수한다. 드디어 아내는 남편이 만든 신약을 믿고 먹었다. 약은 반점을 없애는 효과가 있었지만 아내는 끝내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정신과 의사는 의심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많이 만난다. 특히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이민자들에게 아주 흔하다. 일상생활 중 항상 일어나는 의심은 생각(Thought)이나 믿음, 신념 (Belief, Idea)에 뿌리를 둔다. 생각은 보통 과학적 접근으로 ‘맞다, 틀리다’ 처럼 사실 확인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신념이나 믿음은 참이냐, 거짓이냐를 구별하기 보다 개인이 보고, 듣고, 느끼는 각자의 가치관, 판단, 교육 수준, 사회문화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뉴양스를 보인다. 그래서 정신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신념에 대한 문제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된다.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네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의심이 선을 넘지 않도록 잘 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박에 가까운 집착, 피해의식, 과도한 사고(Overvalued Idea-과도한 평가)를 거쳐 피해망상적 성격장애나 피해망상증 까지 번질 수 있다. 집착과 피해의식은 자신이 인식하고 노력하면 모래 위에 쓰여진 글처럼 어렵지 않게 지울 수 있다. 반면 망상적 성격장애나 피해망상증은 돌에 새겨진 글같이 신념이 고착되어서 근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게 된다. 물론 질못된 신념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신념이 위험한 행동을 야기할 경우에 문제를 크게 일으키는 케이스가 많다.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얼굴의 반점이 아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행복한 결혼을 망친다는 두려움에 대한 남편의 집착이 급기야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파멸로 인도한다. 집착이 주위 상황에 예민하고 매사에 용의주도, 철두철미한 측면에서는 좋다. 하지만 강박적 피해의식으로 이어져 집착이 삶과 존재의 의미가 되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상대의 단점이 어느 면에선 장점이 될 수 있으니 긍정적 생각을 품고 서로 보듬고 부족한 점을 메우며 현실에 만족한 삶을 살라는 작가의 충고가 아닐까 한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