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을 패닉에 빠뜨린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TV 토론 이후 당의 한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칼로 찌르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처참한 토론 성적을 받아든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선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어도, 그 누구도 브루투스처럼 손에 피를 묻히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30대의 나이에 상원의원을 시작해 8년의 부통령을 거쳐 70대에 대통령직까지 오른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에서는 ‘성역’ 같은 존재다. 이런 이유로 당 내에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사퇴 요구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채 수면 아래 꾹꾹 억눌러진 모습이다. 하원의원 5명이 공개적으로 사퇴를 촉구했다지만 의사 결정의 중심에 있는 민주당 지도부와 차기 대선 주자들이 반기를 들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사퇴는 없다”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달 5일 ABC뉴스에서 방영된 조지 스테퍼노펄러스와 인터뷰에서 “오직 전능한 주님만이 나를 물러나라고 설득할 수 있다”며 완주 의지를 분명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TV 토론은 “나쁜 밤”이었을 뿐이며 여론조사는 “부정확”하고 3년 반 전 자신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특유의 자긍심을 보여줬으나 인터뷰 이후에도 그를 둘러싼 당내 불안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수석 전략가였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바이든은 이번 선거를 이끌 그의 역량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에 위험할 정도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험신호는 백악관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바이든 대통령의 주변에서 은밀한 정보들이 새어 나오는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이 백악관 참모진 회의까지 참석하고 있으며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것을 강력히 설득했다는 NBC뉴스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헌터는 중범죄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바이든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이자 트럼프 캠프의 공격 대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용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토론을 준비하는 6일 동안 토론 준비가 늘 11시 이후에 시작됐으며 매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낮잠 시간’이 주어졌다는 뉴욕타임스(NYT)의 보도 역시 충격적이다.
백악관 웨스트윙(업무동)의 잇따른 정보 유출은 거취 논란이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익명의 한 정치 분석가는 “NBC와 NYT의 보도는 이 사태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신호”라고 진단했다. 4년 전 트럼프 행정부의 존립을 흔들었던 내부자들의 폭로가 이번에는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주 토론에서 바이든이 붕괴되기 훨씬 전부터 백악관 내부에서 그의 한계는 점점 분명해졌고, 고위 보좌관들이 대통령의 노출 등을 엄격하게 통제해왔다”고 전했다.
현직 대통령이자 차기 대선 후보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건강 상태가 아닐 수 있다는 논란이 거세지면서 미국 대선은 초유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 정치 온라인 베팅사이트 프리딕트잇(predictIt)은 이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올해 11월 민주당의 대선 주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점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전략가는 “민주당의 의원들이 대통령과 언제 결별할지 논의하고 있으며 독립기념일 휴회를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이번 주에 (사퇴 요구의) 댐이 터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윤홍우 서울경제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