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1872~1945)였다. 인간의 본질은 놀이와 깊은 상관이 있다고 본 그는 ‘놀다’라는 뜻의 라틴어 Ludens를 붙여서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인간에게 놀이는 본능 같아서 지금 우리가 즐기는 음악, 춤, 미술, 스포츠는 물론 종교의식, 정치, 전쟁, 철학까지도 그 근원은 놀이였을 것으로 그는 보았다.
그의 이론을 적용하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모습은 뭔가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상태. 낡은 장난감 하나 들고 온종일 재미있게 노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그렇게 놀아보았을까” 생각해보면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들인 우리는 놀이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논다’는 말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 붙었다. ‘논다’는 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활동이 아니라 뭔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상태, 그래서 ‘공부하지 않고 논다’ 거나 ‘일하지 않고 논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자본주의가 삶을 지배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놀이이다. 놀이는 시간 낭비이자 비생산적 소모행위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좋은 예가 이민1세 한인들의 삶. 낯선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두 세배는 더 일해야 한다는 각오로 휴일 없고 휴가 없는 삶을 수십년 살아왔다. 그렇게 놀이는 삶의 영역 저편으로 밀려나고 매순간 일/공부 압박감에 짓눌려 사는 현대인들에게서 호모 루덴스의 모습은 사라졌다. 경제가 최고 가치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삶이 있을 뿐이다.
근년 놀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놀이는 단순한 재미 이상의 활동이라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일주일에 두어 시간 혹은 하루에 단 몇 십분이라도 온전히 즐김의 상태에 있어보는 것이 심신의 건강에 대단히 유익하다는 보고들이다. 뭔가 재미있는 여가활동, 다시 말해 취미 하나를 찾아서 자주 즐기라고 연구진은 권한다.
2021년 발표된 관련 연구에 의하면 취미활동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취미는 무엇이든 취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특징. 등산이 취미일 수도 있고, 산기슭에 앉아 개미를 관찰하는 게 취미일 수도 있다. 뜨개질, 자동차 수리, 요리, 자원봉사, 요가, 라인 댄스 등 활동의 종류에 따라 취미는 심리적 안정, 스트레스 완화, 인식력 개선, 근력강화, 면역기능 개선 등으로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유익한 습관으로 행동을 개선하며, 대인관계를 활발하게 해 고독감이나 우울감을 사라지게 하는 등의 이점이 있다고 한다. 당장은 시간 낭비 같지만 장기적으로 자신에 대한 좋은 투자라는 말이다.
한인1세들 중에는 취미가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취미를 즐길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십년 일만 하다 은퇴하고 나면 노년이 막막하다. 일 외에는 해본 게 없어서 하루 24시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뭔가 재미있는 활동, 취미를 찾아야 한다. 2023년 9만3,000여 노년층의 관련 데이터 분석결과를 보면 취미활동을 하는 노인들은 취미가 없는 노인들에 비해 건강하고, 행복감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인간은 재미를 추구하며 즐겁게 살도록 설계된 존재. 우리 안의 호모 루덴스를 살려내야 하겠다. 그것이 젊어서는 건강하게, 노년에는 무료하지 않게 사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