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석 달째 전망치를 넘어섰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연준이 현재의 고금리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경기둔화가 따라올 수 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가도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경제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이유를 확신하지 못한다. 아마도 뒤끝이 긴 ‘팬데믹 숙취’가 부분적인 이유일 수 있다. 그러나 재화와 용역 구입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한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가져온 부산물이기도 하다.
팬데믹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바이든 행정부도 납세자들에게 각종 지원금을 제공하는 초대형 팬데믹 구제조치를 통해 경기부양을 시도했고, 당시 시중에 풀린 어마어마한 구제기금에 떠밀려 인플레 압박이 가중됐다. 그러나 팬데믹 구제 조치의 영향이 이미 소멸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의 하락을 가로막는 용의자는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좁혀진다. 도널드 트럼프는 재임시 가시적인 치적을 남기지 못했다. 대신 그는 수십 년간 유지된 초당적 관세정책의 기조를 깨뜨렸고, 중국은 물론 미국과 가까운 대다수 서구 우방국들까지 관세 대상국 목록에 포함시켰다.
바이든은 2020 민주당 대선 후보시절, 트럼프의 관세를 강력히 비난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들 대부분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는 ‘기반시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대규모 지출법에 강력한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조항을 집어넣었다.
관세 정책과 바이든의 양대 지출법은 중국 의존도 축소, 경제 복원력 증강, 그린에너지 보조금 지급, 국내제조업 촉진 등 특정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미국인 소비자들에게 여기에 들어가는 추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역시 탄소세에 비해 실질적인 탄소배출량 축소비용이 다섯 배나 높다. 바이든이 설정한 정치적 목표는 추구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그의 고비용 정책이 인플레이션 진화를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견해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관세는 ‘인플레 공범’으로 몰리는 정책들 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쁘다. 트럼프의 주장과 정반대로 관세는 미국인 소비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다. 미국세관국경보호국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이들 관세로 인해 지금까지 2,300억 달러 이상을 추가로 지출했다. 뿐만 아니라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농산물수출 손실 보전금이 농가에 지급됐다. (물론 중국이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은 탓이다.)
관세가 효과적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워싱턴이 원했던 중국의 정책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은 반면 미국 경제는 막대한 자금과 일자리를 잃었다. 택스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20만 개의 일자리와 국내총생산(GDP)의 0.25%에 해당하는 700억 달러를 관세 비용으로 지불한다. 페터슨 국제경제학연구소가 2022년에 제안한 온건한 무역 자유화정책안들 가운데 한 건만 시행해도 인플레이션을 1.3% 포인트 가량 낮춰 가구당 800달러에 가까운 비용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앞서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관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실제로 USTR은 2년간 자료를 검토했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역 촉진은 USTR의 핵심 업무 영역에서 제외됐다.)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귀띔해준 바에 의하면 USTR가 관세 정책 실패를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뒷감당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책실패를 지적하면 해당 관세 해제까지 동시에 건의해야 하는데 선거를 치러야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달가워할 리 없다. 한마디로 윗선의 눈치를 살피느라 우물쭈물한다는 얘기다.
점증하는 미국내 보호주의에 수반되는 외교정책 비용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주 바이든은 미국 가장 가까운 우방국 가운데 하나인 일본의 총리와 미-일 양국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회담에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일본 기업의 US스틸 인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벌써 몇 년째 휘청대는 US스틸은 왕년의 위용을 잃어버린 공룡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일본제철(Nippon Steel)은 US스틸에 투자하고, 미국철강회사가 체결한 기존의 노동계약을 존중하며, 2026년까지 기존 직원 전원의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간단히 말해, 고사위기에 놓인 미국 기업에 생명이 동아줄을 약속한 셈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에겐 실질적인 내용보다 언론을 통해 형성되는 대중의 인식이 중요하다.
지난 수년간 미국은 세계화와 경제적 효율성에 올인 함으로써 국내 제조업 기반을 송두리째 훼손해 제조산업 분야의 고용위기를 초래했고,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우익 포퓰리즘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대중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등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이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국가에서도 우익 포퓰리즘이 붐을 이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같은 주장은 타당성을 입증받지 못한다. 제조업의 퇴조는 국가 경제 발전단계의 한 부분이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제조업 부문을 중시한 중국의 경우에도 경제에서 제조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의 32%에서 2022년의 28%로 하락했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은 과거 30년간 세계화가 가져온 극적인 가격 하락에 익숙해진 상태다. 의복, 가전제품, 통신장비와 항공여행 비용은 이 기간에 크게 떨어졌다. 이처럼 큰 이점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에 관한 불만 또한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을 지닌 관세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제기하는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관세가 초래한 인플레이션은 전체 인구의 몇 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실직자들뿐 아니라 소비자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인상된 가격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은 힘있는 위치에 있는 정치인들에게 불만을 터뜨리게 된다. 포퓰리스트들을 견제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이 주류정치인들을 벌주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건 대단히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