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첫광고
엘리트 학원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맥 다니엘 팍의 숲에 깃든 영혼의 울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4-15 08:19:48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맥 다니엘 팍의 숲에 깃든 영혼의 울림이 산허리를 휘감아 돌며 메아리처럼 대자연 속으로 사라져 간다.

언덕에 오른 후 전망이 좋은 곳에 이르러 허공을 향한 채 바람결에 응어리진 삶의 숨결을 실어 보내고 있다.

삶을 냉철하게 응시하는 나의 의식은 거친 현실의 물결에 휩쓸려 표류(방황)하는 것은 아닌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삶에 근간을 흔드는 실체는 무엇인가?

삶의 결핍은 도덕적 가치의 상실로 이어지며 자신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연약함이 아닌가? 삶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는 진지함에 앞서 자신의 무력감에 부끄러움과 연민을 느낀다.

 어느 한순간에 나이 들어가는 외형의 자아가 무척 왜소해진 모습이라 할까.

성숙한 미래를 실현할 열망에 찬 믿음직한 큰 모습이 되어갔으면 좋겠다. 

나이 들어감과는 달리 생각은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모습에 적잖은 위로가 된다.

기분전환을 위해 하모니카로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하고 있다. 하모니카의 맑은 화음이 숲의 평온한 숨결을 타고 주위에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몇 년 전 LA에 거주하시는 고모님께서 이곳 애틀랜타 작은딸 집을 방문하셨다. 여러 차례의 방문에서 아내는 뛰어난 음식 솜씨로 고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했으며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는 시간에 고모님께서는 조카와 소통하는 시간을 좋아하셨고 친자식과 할 수 없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하셨다.

어느 날 생신을 맞으신 고모님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를 한식점에서 가족들과 간소하게 마치고 동생 가정으로 귀가했다. 가라오케 앞에서 동생 부부가 축하 송을 부르고 성악을 전공하신 고모님께서는 평생을 교회 성가대원으로 헌신하신 분이라 찬송가 <나의 갈길 다가도록>을 경건한 마음을 담아 부르셨다.

이어 옛 시절을 생각하셨는지 <그리운 금강산>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천부적인 메조소프라노의 역량이 살아나는 절제된 미성은 깊은 영혼의 울림이 실려 있었다. 

지금 그분의 청아한 음성이 살아나는 순간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몇 년 전 LA에서 96세의 삶을 누렸던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코로나 기간이라 달려가지 못해 내내 오열했고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시대적으로 격변기에 질곡의 삶을 살았던 그분은 첫사랑의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고통(한)의 삶을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자식(손자,녀)들을 돌보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푸셨고 늘 주님을 찬송하면서 기쁨의 삶을 사셨다. 특히 큰조카인 나에게 많은 사랑을 베푸셨다.

“내가 조카를 몸으로 낳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 생각해 사랑한다”라는 말씀으로 늘 등을 정답게 토닥거려 주신 어머님 같은 분이셨다.  초기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이해하시며 격려와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어 큰 힘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 고모님과 고모부를 뵙기 위해 LA 시니어 아파트를 방문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고모부께서는 구수하게 옛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6.25 전쟁 발발 2년 전에 내가 어린 조카를 업고 고모는 아주 어린 딸을 업고 나의 친할머니와 함께 분단의 38선을 목숨을 걸고 넘었다”라는 말씀에 고마움을 표하며 이제는 어깨가 처진 그분을 사랑의 마음으로 얼싸안았다.

고모님과 함께 3일간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별의 긴 포옹 속에서 ‘내가 조카, 며느리 집에 함께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를 원했었다’라는 말씀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LA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감정을 억누르며 울음을 삼키느라고 애썼다.

그때의 이별이 두 분을 마지막으로 뵙는 인사가 되어 가슴이 매우 아프다.

고모부는 99세의 축복 된 삶인 백수를 누리셨고 얼마 후 고모님께서도 96세로 영면하셨다.

격동기에서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1남 2녀를 키우고 교육한 후 늦둥인 아들이 미국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큰 인물이 되었으니 성공적인 이민자의 삶이라 하겠다.

고모님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가정과 자식을 위해 희생되었지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는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고모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기만 했던 부끄러운 모습의 조카가 그분을 기리며 명복을 빌고 있다.

고모님께서 생전에 즐겨 부르시던 “베토벤”의 흥겨운 춤곡 <미뉴에트>와 <그리운 금강산>의 애절한 음성의 노래가 함께 산책했던 맥 다니엘 팜 팍 숲에 감미롭게 울려 퍼지고 있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신앙칼럼] 명품인생, 명품신앙(Luxury Life, Luxury Faith, 로마서Romans 12: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지금 조금 힘쓰면 영혼이 큰 평화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인생을 <명품인생(Luxury Life)>이라 과감하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유럽은 산적한 위협의 한 복판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전통적인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들끓는 분노 속에 침몰했다. 경제는 둔화세를 보이거나 기껏해야 답보상태

[오늘과 내일]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작년 12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떼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순간에 우리는 질문해 본다. 지난 한해 동안 행복하셨습니까? 후회되고 아쉬웠던 일은 없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굉장히 낯선 이름의 이 화가는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매혹했던 경이로운 여성이다.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이자 파격의 아이콘이며 사교계의 총아이기도 했던 그녀는 남자와 여

[에세이] 묵사발의 맛

꽃동네에서 먹은 묵사발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처음 꽃동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수녀님들이 꽃을 많이 가꾸며 가는 동네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시와 수필] 하늘 아래 사람임이 부끄러운 시대여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

[삶과 생각] 천태만상 만물상
[삶과 생각] 천태만상 만물상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인류사회와 인생사는 천태만상 총 천연색이다. 크고 작은 모양과 색깔 등 각기 다른 특성이 수없이 많고 또 장단점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A B C D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A B C D

최선호 보험전문인 예전엔 어른이 어린아이를 보고 한글을 깨쳤는가를 물을 때 “가나다를 아냐”고 묻곤 했었다. ‘가나다’가 한글 알파벳의 대표 격이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

[독자기고] 쉴 만한 물가-Serenity

제임스 한 목사 2024한 해가 간다. 석양이 서쪽 하늘에 드리워 지면서 밝은 빛이 지워져 간다.마지막 노을을 펼치면서 2024를 싣고 과거로 간다. 이별이다. 아쉬움이다. 떠남이

[김용현의 산골 일기]  죽은 나무 살리기
[김용현의 산골 일기] 죽은 나무 살리기

산기슭에 자리한 아파트의 작은 거실이지만 동쪽으로 큰 유리창이 나 있고 그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면 한 겨울인데도 따뜻한 봄날 같다. 문득 바깥추위가 걱정돼 텃밭에 갔더니 꽃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