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 2년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진 한국의 22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현 집권세력에 대해 매서운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
10일 치러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정권 심판론’을 외쳐온 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 달 말부터 4월초까지 5일 동안 치러진 재외선거 투표율이 62.8%로 기록적인 수준을 보였을 때부터 정권 심판의 바람이 강하게 휘몰아칠 것으로 내다본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집권세력의 참패로 현실이 됐다
여당이 받아든 성적표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권력을 잡은 지난 2년 동안 민주적 가치와 역사는 퇴행을 거듭해 왔으며 경제 등 민생은 악화되고 국민들의 삶은 더 고달파졌다. 그런데도 선거를 앞두고는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들을 남발하는 등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거듭했다. 장기적인 비전은 찾아볼 수 없고 단기적인 대응과 임시방편만 있을 뿐이었다.
또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입만 열면 ‘자유’와 ‘법치’를 입에 올려왔다. 그의 국가기념일 연설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수십 번씩 등장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가 말한 자유는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만을 위한 편향된 자유일 뿐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용인할 만한 내공이나 철학이 없어 보인다.
‘법치’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건 완전 ‘내로남불’이다.
대통령은 ‘검찰정권’이라는 비판의 타당성을 입증해주기라도 하듯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 그리고 측근들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고 정치적 반대세력들에게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잣대를 들이대 왔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이제는 그 칼날이 자신과 가족, 그리고 측근들을 향하게 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은 대통령의 능력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태도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몰린다 싶으면 말로는 “국민들이 옳다”고 하면서도 정작 민의에 귀를 기울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대하는 모습도 국가지도자로의 바람직한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줄만한 정서적 자산이 결핍돼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자리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 잠깐 도어 스테핑 형식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더니 몇 개월 지난 후부터는 이것이 버거운지 아예 없애 버리고 담화 등의 형식으로 자기 얘기만 일방적으로 해오고 있다.
백악관 기자실 터줏대감이었던 헬렌 토마스는 “대통령에게 일문일답을 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척도로 보면 과연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도 이런 일련의 퇴행을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번 총선은 거대 양당의 진영논리와 팬덤 정치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한국정치의 근본적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는 시대정신 속에서 치러졌으며 총선을 통해 분명한 민의가 확인됐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보여 온 이해하기 힘든 행태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과 판단에 누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불투명한 상황 등 때문에 그가 이런 변화의 길을 갈 것이라 손쉽게 예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총선 결과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직시하고 반성과 변화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만이 그 자신과 대한민국이 살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