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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의 하프타임] 먼저 ‘겸손한 권력’이 돼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4-02 11:58:24

조윤성의 하프타임, LA미주본사 논설위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100여 년 전 정치에 등장한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용어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변천돼 왔다. 지금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를 뜻하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과거에는 남미 좌파정권들의 퍼주기식 경제 운용이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흔히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우파 포퓰리즘이 지구촌에서 점차 기승을 부리고 있는 추세이다, 유럽의 극우정치 득세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한 분석에 따르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좌파와 우파 포퓰리즘 정권의 비중이 엇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도 포퓰리즘 열차에 올라타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집권 초기에는 세수결손이 최악인 상황임에도 부자 감세안을 밀어붙여 우파 포퓰리즘의 면모를 드러내더니 최근에는 이념적 색채마저 모호한 전방위적 포퓰리즘 캠페인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몇 달 전에는 많은 전문가들의 문제점 지적에도 불구하고 개미 투자자들의 표를 의식한 듯한 공매도 금지와 함께 금융투자 소득세 폐지 등 선심성 감세정책들을 발표하더니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부터는 대통령이 ‘민생 토론’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채 전국을 돌며 개발공약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이 같은 최근 행태는 그가 그동안 내세워 온 정부운영 기조와 너무 다르고 이른바 ‘국정철학’에도 완전히 어긋나는 것들이다. 대통령이 전국을 돌면서 내놓고 있는 공약들이 실제로 실현되려면 수백조원이 소요돼야 한다. 일련의 감세정책으로 세수를 줄여 놓고는 ‘건전재정’을 명분으로 필수적인 연구개발 예산까지 수조 원 삭감했던 정부의 행보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환경보존을 위해 국토의 30%까지를 보호지역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던 대통령이 지난 2월 민생토론회에서는 대표적 보호지역인 그린벨트를 대폭 해제해주겠다고 밝혔다. 이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선회로 누가 봐도 총선용이라 여길 수밖에 없다.

조금 다른 이슈이긴 하지만 간호사들의 진료행위 확대를 골자로 한 간호사법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의료 직역들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단호하게 거부권을 행사했던 대통령이 의대증원에 반발한 의사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태도를 바꿔 간호사들을 더 많은 진료행위에 투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달라진 입장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조차 없었다. 윤 대통령다운 태세전환이다.

통상적으로 자신이 했던 약속과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할 경우에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입장을 번복하는 것은 결코 마음 편한 일이 될 수 없다. 소신으로 지켜 온 믿음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날 경우에도 역시 그렇다.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가 생길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합리화라는 과정을 통해 이것을 해소하려 들게 된다. 그럼에도 이것이 잘 안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쩍음이나 쑥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는 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류가 소신형 아첨꾼과 권력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특히 권력에 중독이 되면 뇌의 호르몬이 변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읽고 재구성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공감 능력이 뚝 떨어진다. 이런 권력자들은 합리화에 뛰어난 정도를 넘어 아예 부조화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취임 첫해 인사 난맥상이 계속될 때 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언론과 야당 등 남 탓으로만 돌렸다. 하자투성이 인물들을 고른 건 자신인데도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 때문이고, 타인이 잘못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실력 탓으로 돌리는 ‘귀인오류’가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드러졌다. ‘자기객관화’를 잘 하지 못하는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성향은 왜 그가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데 그토록 인색하고 공감능력이 빈약한지를 잘 설명해 준다.

한국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개인적 능력이나 엄청난 국정성과가 아니다. 그저 권력의 소유주인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 민주주의의 기본적 규범과 가치를 잘 받드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포퓰리즘에 기대지 않아도 지지율은 저절로 오르게 돼 있다. 하지만 지난 2년 윤 대통령의 행태는 ‘겸손한 권력’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2019년 집권 이후 2012년 국가부도까지 갔었던 그리스 경제를 되살린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지난 2월 영국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고를 통해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정직성과 모든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정직’과 ‘경청’이야말로 겸손의 덕목 아니던가. 마치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매몰돼 포퓰리즘에 몰두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네는 개인적 조언처럼 들린다.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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