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단어는 오래전부터 유럽 여러 언어에서 사용되어온 역사적 개념이다.
‘민주정’은 인민이 통치하는 정부 형태를 말한다. BC 8세기 귀족정이었던 도시국가 아테네는 오랜 시간에 걸쳐 민주정으로 바뀌었다. 아테네 민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기관은 입법부 역할의 민회와 행정부 역할의 500인회이다. 그러나 민주정의 발달로 정치에 참여하는 자유시민의 무절제한 권한 남용의 폐해를 목격한 아테네 철학자들은 민주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BC399년 민주정에 의해 추첨된 아테네의 500명 배심원들은 360대 140의 표결로 젊은이를 선동하고 국가가 믿는 신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자는 고발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재판이 있은 지 약 한 달 후 소크라테스는 죽음과 혼의 불멸성에 대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 통곡하는 친구와 제자들을 타이른 뒤 의연하게 독약을 마셨다.
플라톤은 진정한 현자인 스승을 어처구니없이 죽인 민주정을 결코 용납하지 못했다. 그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시민이 추첨을 통해 관직에 앉게 된다는 점, 그런 사람들이 민회에서 중차대한 국가적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 매우 위험하다고 보았다.
한편 링컨 대통령은 1863년 게티즈버그에서 거행된 남북전쟁 희생자 봉헌식에서 “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라는 민주정부의 국민을 결집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BC5세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자리에서 “우리의 훌륭한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는 권력이 소수의 손이 아니라 전 국민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연설은 모두 민주주의 덕목을 열거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지적된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은 좌우 진영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히틀러는 아이러니하게도 쿠데타가 아니라 민주적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의회의 다수가 되자 그는 다수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시작하며 폭력적 독재정권으로 변모했다.
자연법과 자연권을 내세운 사람들도, 고대 공화국의 용맹한 자유를 찬미한 사람들도, 근대 공화국의 개인사생활 자유를 지지한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비난했다. 공공성이 결여된 사회, 욕망, 비합리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민주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확신했다.
1948년 만들어진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렀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진부하고 흔한 이름이 되었다. 격동의 시간은 지나갔고, 더 이상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는 진정 민주국가에 살고 있는 것인가?
알렉시스 토크빌은 “모든 시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어디쯤 가고 있는가? 민주시민인 우리 모두 성찰해보아야 하겠다.
<신응남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