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사한 곳은 55세 이상이 거주하는 주택단지이다. 언덕위에 대단지를 조성하면서 몇 겹으로 돌아가며 마치 달팽이가 속살을 감싸 안은 형태로 길가 양 옆으로 단독주택, 타운하우스, 빌라, 콘도가 줄지어있고 잔디밭 정원이 소담스럽게 꾸며져있어 눈길을 끈다. 평소 주택지만큼은 조용한 곳을 선호해왔던 터라, 이사한 후 지내고보니 온통 주위가 적막감에 쌓여있는 분위기여서 적응하기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사하기 전에 가볍고 깨어지기 쉬운 가재도구들을 미리 옮겨놓기 위해 이 곳을 들락거리다 우연히 이 단지에 거주하는 한인 부부를 만났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가와 이 지역에서는 각 가정의 ‘프라이버시’를 극히 중요시한다는 충고 같은 언질을 준다.
그리고 보니 이곳은 비교적 세련되고 아늑한 분위기여서 중상층의 노인들이 젊은 시절 부지런히 재산을 축적한 탓인지 노년 생활을 여유롭게 조용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한인부부가 전하는 ‘충고’가 이웃 간에 “벽을 두고 살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며칠 전 남편이 아래층에서 쿵쾅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내려갔다가 모처럼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는지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아래층에 거주하는 80세가 넘어 보이는 노인과의 대화가 재미있어 길어졌다는 것이다.
메릴랜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는 그 노인은 신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끝없이 늘어놓았단다. 신의 존재는 머리로는 설명될 수 없고, 가슴으로만 느껴질 뿐이라는 그 노인은 서양장기를 같이 뜨자며 자신의 집은 항상 열려있으니 언제든지 자기 집에서 토론을 해보자고 했단다. 아마도 남편이 아시안이란 호기심과 같은 또래이고 서로 대화하는 중에 마음이 상통했던 모양이다. 벽을 쌓아두고 사는 곳이란 한국인 부부의 생각과 대조되는 팔순 백인 노인의 생활 태도이다.
<윤영순/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