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삶과 생각] 노년의 즐거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3-04 17:12:40

삶과 생각,이재순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은퇴 후 몇년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즐겁다. 직장으로 출근해야 할 걱정이 없으니 하루가 휴일처럼 느껴진다. 직장생활의 팽팽한 긴장에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기다려지던 휴일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그 휴일의 연속이 노년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난다. 삶을 얽히게 하는 수많은 걱정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이 찾아온다.

그 자유는 우선 경제적 부담에서 오는 가벼움이다. 젊은 시절 개미처럼 일해서 아끼고 모아놓은 연금 같은 노후 대책으로 돈 걱정에서 벗어났다. 한마디로 이젠 경제생활을 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가 있다니 이런 축복을 어디에 비교할까! 그렇다고 그냥 노는 것은 아니다. 취미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된다는 선택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보니 자녀 양육이라는 책임에서도 벗어났다. 결혼해서 별 계획없이 아이를 낳는다. 자식을 기르는 책임은 수십년간 어깨를 짓누른다. 그야말로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가르쳐야 하는 나날의 일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애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자립할 때까지 계속된다. 자식을 사랑하는 즐거움이 있다고 해서 부모로서의 수고나 책임감이 덜 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어깨가 가벼워짐을 느낀다.

나이 먹고 얻은 것은 또 있다. 남의 눈에서 좀 자유스러워졌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조심스러움 때문에 나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절 경험에서 익힌 뚝심이라고 할까? 늙은이의 고집이라고 할까? 주체성의 확립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내 외면이나 내면의 장신구를 벗어버리는 용기가 생겼다고 해도 좋겠다. 구태여 치장을 하여 본 모습을 돋보이게 하는 노력을 좀 덜 하게 됐다. 척 하는 허위 모습을 키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아는 척, 잘난 척, 가진 척 하는 내면의 치장을 좀 덜 하게 됐다.

그렇다고 갑자기 새 사람으로 변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생긴 모습대로 속살을 조금 두텁게 다져갔다는 얘기가 되겠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부드러워 졌다. 정의감에 불타서 옳고 그른 흑백의 세상이 아니라 여러 개의 색깔도 존재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생겼다. 모지게 싫은 사람도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하면 조금은 용납이 된다. 싫은 것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존할 여백을 남겨두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남의 일을 일일이 집고 넘어가지 말고 눈감아주는 여유가 좀 생겼다고 할까. 불의에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은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으니 내 것이 늘 옳다는 생각은 나를 괴롭힐 뿐 세상을 바꾸는 힘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실수를 통해서 학습된 생각이다. 그래서 공자님도 60쯤 되면 귀가 순해져서 웬만한 말도 거리낌 없이 쉽게 소화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했나보다.

노년의 즐거움은 잘 익은 겨울 김장김치 같다. 여러 가지 양념이 잘 섞여 추위를 견디고 발효되어 씹을수록 깊고 감칠맛이 난다. 풋김치의 신선함도 좋지만 익은 김치 또한 그윽한 그 맛은 비할 바가 아니다.

<이재순/인디애나>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7] 어머님이 동사라면
[미주시문학을빛내고있는 10명의시인을찾아서7] 어머님이 동사라면

신은철 (상략)어머님 일생몸의 시간은 매일매일 반복된 시계 시간이었지만맘의 시간은 순간마다 새로운 삶의 시간,아침에 묻는 말씀 “오늘은 무엇을 배우지?”저녁에 묻는 말씀“오늘 배운

[행복한 아침]   남기고 싶은, 남겨야 할

김 정자(시인 수필가)       부지불식간에 한 해가 지나가 버리고 마지막 달 12월 앞에 섰다. 마지막이란 말 앞에 서게 되면 언제든 숙연해 진다. 하루의 마지막, 한 주간의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삶과 생각] 고 이순재 원로 국민배우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날 연기생활을 함께 했던 이순재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머나먼 미국 애틀랜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인의 명복이나 빌

[추억의 아름다운 시] 향수

정지용 시인​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해질 무렵)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수필] 편지 한 장의 미학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샬럿에 사는 친구가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공기 포장지로 꽁꽁 싸맨 유리병 속 생강 레몬차, 일회용 팩에 담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파트 D 약값 절약 전략

최선호 보험전문인  메디케어 파트 D는 처방약 보험으로, 오리지널 메디케어 가입자나 일부 어드밴티지 플랜 이용자가 별도로 가입해 약값을 보장받는 제도다. 그러나 약값은 플랜에 따라

[애틀랜타 칼럼] 내 탓이라고 말하라

이용희 목사 우리가 일을 하다가 어떤 실수를 저질렸을 때 간혹 구실을 들어 변명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어떤 관용이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의 CPA코너] 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 - 새로운 세법 풀이 제17편 : 자선 기부 (Charitable Contribution) 소득공제, 어떻게 변경되나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2026년부터 자선기부 공제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표준공제를 적용하는 납세자도 일정 한도 내 현금 기부에 대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법률칼럼] 영주권·비자 거절이 곧바로 추방 절차가 되는 시대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들어 USCIS의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영주권이나 비자 신청이 거절되더라도 일정 기간 재신청을 고민하거나, 자진 출국을 준비할 수 있는

[행복한 아침]   안녕 11월이여

김 정자(시인 수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품고 있는 11월 끝자락이다. 가을이라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고 겨울이라 하기에는 어찌 이른 듯, 가을과 겨울이 맞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