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한국일보 애틀랜타
베테랑스 에듀

[시론] 의대 증원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2-29 13:25:35

시론,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요즘 신문 지면은 의과대학 정원과 관련된 공방으로 도배됐다.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은 때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왜 이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하는지 궁금한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대학병원을 예약하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간신히 예약이 돼 진료를 받으러 가도 대기 줄이 길어 1시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며, 막상 긴 기다림 끝에 진료실에 들어가도 의사를 보는 시간은 채 5분에 못 미치기 일쑤다. 이런 경험을 해봤다면 누구라도 의사를 늘리는 데 공감하게 된다. 의사들도 이런 국민적 공감대를 잘 알고 있고, 심지어는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의사도 상당수다. 그런데 왜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날 선 공방과 잡음은 계속 반복될까.

얼핏 모순처럼 보일 수 있는 이 상황도, 문제의 본질이 정부의 잘못된 가격통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까지 정부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값싸게 제공한다며 의료 수가를 낮게 규제하고 환자 본인 부담도 최소한으로 유지해왔다. 당연히 가벼운 증상에도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많아지고, 정작 진료가 절실한 환자들은 차례가 밀리기 일쑤다. 환자 한 명에게 얻는 수입이 낮기 때문에 의사는 많은 환자를 봐야 수지를 맞출 수 있고, 그만큼 환자 한 명에게 쓰는 시간이 짧아지니 의료의 질도 높아질 수 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고가의 의료 장비를 구비하고 위험한 수술을 많이 하는 대형병원에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첨단 의료 장비와 고난도 수술에는 그만큼 높은 비용이 지출되니 병원의 수지를 맞추려면 의사 채용은 최소한으로 하고 의사 한 명당 환자 수는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주52시간제 적용 예외 대상이라 주 60~84시간까지 근무시킬 수 있는 전공의들은 급여도 높지 않으니 이제 대형병원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게다가 수많은 환자 진료에 동원되는 간호사들도 격무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봤을 대학병원에서의 불쾌한 경험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됐다.

정부도 문제의 본질이 잘못된 규제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수의료 분야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수가를 인상하겠다는 보상책도 나온 것 같다. 과거에 비해 한 걸음 나아갔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대부분의 수가는 그대로 놓아두고 의사만 늘린다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값싸고 질 좋은 택시를 제공하겠다고 요금을 낮추고 택시를 대폭 늘리면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오히려 난폭 운전만 늘어날 뿐이다. 의료라고 다를 바 없다. 수가 현실화 없이 의사만 늘리면 의료의 질이 더 저하되고 의료사고가 증가할 우려가 더 높아진다. 의사를 늘림과 동시에 모든 의료 분야의 수가를 현실화해 환자 한 명당 15분이나 30분을 진료해도 수지를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의 질이 높아지고 의료사고도 줄어들며 의료 소비자인 환자와 국민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물론 의료 수가 현실화에는 보험료 부담이 따른다. 사실 싼 게 비지떡인 만큼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서는 국민들도 어느 정도의 추가 부담은 받아들여야 하고, 이를 설득하는 것은 규제 주체인 정부의 몫이다.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는 과잉 소비에 대응해 경미한 질병의 본인 부담을 높이고 진료 횟수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징수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정부의 책무다. 또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운영을 효율화해 비용을 줄이는 것 역시 정부가 할 일이다. 

즉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국민 복지를 제고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책무는 의대 정원 확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정부들이 포퓰리즘에 빠져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 탓만 하고 정작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책무들에는 소홀히 해왔기 때문에 의대 정원을 둘러싼 똑같은 갈등과 공방이 매번 반복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애꿎은 환자와 국민들 몫이다. 사직한 전공의들도 잘했다고 할 수 없지만 의사들이 밥그릇만 챙기는 것으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의사 탓만 하는 과거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패배의 책임을 선수에게 떠넘긴 위르겐 클린스만과 무엇이 다를까. 이번 정부는 좀 제대로 했으면 한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단상] ‘카피 인생을 살지 말라’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죽기 전에 두 아들에게 애써 키운 가업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얼마안가 두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유업을 다 들어 먹고 망하고

[주말 에세이] 헬렌을 위한 기도

한국에서 돌아오니 마당 곳곳에 심어진 화초들 사이로 불쑥불쑥 솟아 나온 풀이 있었다. 풀만 봐서는 냉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분명 한국에서 식용이나 약재로 쓸만하게 생겼다. 농

[삶과 생각] 밥 한끼, 그 고마움

1980년,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잡지사에서 2년인가 3년차 기자 때 사진부 여기자와 함께 거제도로 출장을 간 일이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는 한국에서 등대는 바다를 항해하

[발언대] 5·18 광주항쟁과 민주주의

더불어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할 것을 수차례 주장했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압도적 승리를 거두어 다

[전문가 에세이] 마약 재활 치료

이것은 내가 만난 청년 B의 실화다. 그가 집을 떠난 건 17살, D와 F로 도배된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던 날이다. 중학교 때부터 이런 저런 마약을 접해

[만파식적]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

2021년 4월 브룩 롤린스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 사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돕는 싱크탱크의 발족을 유

[시론] 피곤한 AI(인공지능)

바야흐로 AI(인공지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컴퓨터와 정보 및 데이터 처리, 머신러닝(기계학습)들의 기술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인간이 할 수 없는 온갖 계산을 통하여 이제 우리

[뉴스칼럼] 연방도 마리화나 규제 완화

연방정부 규정으로는 사용은 물론 소지도 불법인 마리화나에 대한 정책이 변화의 길로 들어섰다. 마약 단속 전담부서인 연방정부 기관(US Drug Enforcement Agency)은

[행복한 아침] 3도 화음

김정자(시인·수필가)   정기검진으로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팬데믹 이전에 만나 뵙고는 긴 시간을 보낸 우연한 만남이 예측없이 이루어졌다. 우선 반가움을 나누고 오랜만에 이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5월에 못다 부른 노래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5월이면 생각나는 옛사람이 있다. 어느덧 30년이 지난 한국에서 가슴 아픈 사연의 추억이다.클래식 음악 전문점을 경영하고 있었던 어느 날 오후 쇼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