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어느새 바람 소리가 깊어졌다. 자연에서 배우는 교훈은 인간은 한낱 “바람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서 인간의 한계성과 생로병사의 교훈을 배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25)
성경의 말씀에도 자연의 어김없이 순환되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한순간의 “초로와 같은 인생” (草露人生)임을 깨닫게 한다.
풀에 맺힌 이슬과 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음이 아닌가?
새해에 새롭게 전개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기 위해 신선한 변화의 바람에 도전하고 싶다.
자신의 성취감과 기쁨을 누리며 안락함에 익숙하게 길들어진 삶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우리가 타성에 젖은 일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새로운 삶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일상의 순응에서 벗어나려는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가?
삶의 영역에 존재하는 현상과 자신이 바라는 현실의 긴장과 모순이 갈등을 일으키는 이유다.
새해에는 삶에서 비롯되는 버거움과 쓰라림, 온갖 갈등과 모순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과 목표의식을 갖고 활기차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공원 산책로의 언덕에 세워져 있던 풍향(풍속)계가 쓰러져 작동 불능 상태이다.
공원 관리 사무실의 세심한 손길에 의해 속히 반듯하게 세워져 제 기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풍속을 가늠할 풍향계가 알림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함이 아쉽다.
작동 불능인 풍향계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현실의 상황에서 위기를 맞는 순간을 보는 듯하다. 우리 삶의 존재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의 모순을 경험하게 되지 않는가?
마음과 의식의 풍향계가 작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 삶은 이미 위기에 처해 있음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살아가면서 마음과 의식의 기능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삶의 방향을 잃게 되며 삶의 순수한 참뜻이 흐려진다.
나의 삶이 방향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자신을 돌아보는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진다.
불안정과 혼란한 삶에서 고통받는 모습 이대로 신뢰하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로 서게 된다. 그분 앞에서 자신의 진실함이 드러날 수 있는 때가 있음을 믿음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가.
삶을 새롭게 인도하시는 신실한 그분의 은혜에 힘입어 마음과 의식이 건전한 체계를 이루는 능력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함이라.
하나님께서 새로운 뜻을 갖고 인도하시는 삶의 자리가 방향전환 하는 은혜의 기쁨이 되니 감사한다.
인간관계에서 자기 성찰에 의한 수용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깊어져 삶의 유연성을 키운다. 삶의 통찰력이 인격을 성숙한 단계로 이끄는 강인한 의지력이 됨은 물론이다.
삶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상한 마음이 치유되고 의식의 세계가 항상 순수한 생명력을 지녀야 한다. 무엇보다 삶을 위태롭게 했던 무력감의 해소가 당면 과제가 될 성싶다
나의 의식과 내면화된 가치의 결핍이 채워져 무기력했던 삶을 불변의 의지로 개선해 나가길 원한다. 언제나 마음과 의식이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지향해야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에서 진지하게 생각을 가다듬는다.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아픔보다 더 진한 아픔이 있다. 바로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아픔이다.” 미국의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Archibald Macleish)의 고언이다.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과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해 겪는 성찰의 아픔이다.
아픔을 의연하게 극복하는 새로운 마음과 유연한 의식의 변화가 따라야 할 줄 안다.
참신한 사유의 체계와 열린 마음은 풍향계의 기능처럼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길 바란다.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순수한 변화가 삶을 아름답게 꽃피우는 기쁨이 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