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안 커디(도산 안창호 외손자)
도산의 부인이자 나의 할머니인 이혜련(Helen Ahn)은 도산이 이승만을 한 때나마 지원했던 것을 그의 가장 큰 실수로 여겼다.
이승만은 1890년대 독립협회 시절부터 도산의 반대 입장에 주로 섰고 또한 그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리기도 하는 등 독립운동 전체 기간 동안 꾸준히 도산과 우리 가족에게 큰 어려움을 끼쳤다.
이승만이 1948년 한국 정부를 손에 쥔 이후, 도산의 측근이나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방문할 수 없게 만든 일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1963년까지 지속되었다.
현재 이승만의 역사적 평가에는 중요한 결함이 있다. 그는 과연 영예로운 독립운동가인가? 일부 한국인들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는 예상보다 더 우려스럽다. 독립운동이 활발하던 시절의 그는 대한의 이익에 헌신하기보다는 이기적인 권력욕을 품은 지도자에 가까웠다. 그가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애국자들을 여러 차례 배신한 것을 그들은 과연 알고 있는가?
이승만은 동지회를 만들어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도산에 대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금을 횡령하며, 상하이 지역 독립운동을 위해 모아진 자금을 빼앗기도 하였다.
재미한족연합회(United Korean Committee)는 1940년대 초부터 한국전쟁 이후에 이르는 기간, 어떻게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방해하였는가에 대한 많은 공식 리포트를 남겼다. 동지회는 임시정부 자금을 훔치려고 한 이유로 재미한족연합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내가 기부한 이 문서들은 현재 한국의 독립기념관과 하와이 대학에 보관 중이다. 이 외에도 나는 이승만의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리더십에 관한 원본들을 아직 보유하고 있으며 내가 기부한 것들의 사본도 물론 보관 중이다.
이승만은 1945년 이후 재미한족연합회 회원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그가 미군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구성원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라고 보고한 것처럼 재미한족연합회 또한 공산주의자들이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예로, 1925년 이승만은 미국에 거짓된 보고서를 제출하여 도산이 시카고에서 체포되도록 한 일이 있다. 그는 도산이 볼셰비키(공산주의자)라고 허위로 신고했고,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반미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도산의 집을 압수수색하게 된다.
이승만과 동지회의 이런 주장은 1932년 홍커우 공원에서 일어난 윤봉길의 폭탄사건 이후 상하이에서 체포된 도산의 처지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도산이 볼셰비키라는 의혹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한국에서 수감되게 된 것이다.
이승만의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어떻게 도산의 딸이자 나의 어머니인 수잔 안 커디가 미 해군 정보국에서 일하고 국가안보국에서 최고 분석관이 될 수 있었을까.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는 도산의 가족과 아주 친한 관계였다. 그는 초기 1900년대 도산의 신민회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으며, 한때 도산의 여동생인 안신호와 결혼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김구는 나의 할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으며, 1941년에는 도산에 대한 찬사가 담긴 대한민국 국기를 보냈었다. 이 국기는 현재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있다.
1949년 김구가 암살당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을 때, 도산의 가족은 아무도 이승만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과거 하와이에서 폭력적인 분쟁과 함께 그 부패한 이념으로도 잘 알려졌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1915년 하와이 분쟁 당시 박용만을 죽이려고 시도한 사실이 있다. 박용만은 당시 대한인국민회에서 일했고, 1897년부터 암살당한 1928년까지 도산의 가까운 동료였다.
이승만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정직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승만을 옆에서 본 도산과 우리 가족이 알고 있는 역사는 현재 한국 미디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과는 사뭇 다르다.
나의 할아버지는 잔악한 일제 식민주의자들에게 체포, 감금 그리고 고문을 당한 끝에 죽음에 맞았다. 도산 안창호는 자신의 가족과 삶을 희생하여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다.
지금의 한국의 존재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도산의 진실한 리더십이지 이승만의 거짓된 행동은 아닐 터이다.
왜곡된 역사를 사실처럼 믿고 있는 일부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의 인식이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