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보내면서 ‘다사다난’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많이 써 ‘클리셰’가 된 지 오래됐지만 기억에 남지 않은 일들도 포함하고 있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용한 표현 중 하나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미국은 잘 나가고 있는 나라다. 월스트릿저널(WSJ)의 전 편집장이었던 칼럼리스트인 제라드 베이커는 ‘올해의 승자’로 미국 경제를 꼽았다. 베이커는 그 이유를 “만약 1년 전 향후 12개월간 미국 경제가 약 2.5% 성장하고 실업률이 4% 미만에 그치며 물가상승률이 3%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했으면 누구나 비웃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당초 경기 침체가 기대됐지만 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목표치인 2%대로 떨어지고 있으며 3분기에도 위축은커녕 4.9% 성장하는 등 연착륙이 점쳐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올해의 승자’가 되는 데 기준금리를 빼놓을 수 없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현재의 5.25∼5.50%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과 11월에 이어 세 번째 연속 동결인 이번 결정은 향후 추가 금리 인상 종료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FOMC는 새로 업데이트한 점도표(금리 전망표)를 통해서 내년 금리를 0.25%씩 3차례 인하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시장이 기대했던 1%포인트씩 4차례 인하보다는 덜 하지만 8월 점도표에서 예상됐던 0.5%포인트씩 2차례 인하보다는 공격적이다. 여기에 11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 지수가 지난해에 비해 2.6% 상승에 그쳤다. 2년 9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인플레이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준의 긴축재정 조치가 효과를 내면서 조기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절실한 곳이 주택 시장이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7%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주택 시장의 침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3~4%대 낮은 모기지 금리로 주택을 보유한 소유주들이 고금리에 매물 내놓기를 꺼리면서 주택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생애 첫 주택 구입자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현실에서 이루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준금리 하락에 주택 시장의 회복이 달려 있는 셈이다.
연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정책 이면에는 부작용도 자리잡고 있다. 로컬은행의 연이은 파산에 각종 비용 증가로 기업들이 경기 침체 우려에 대비해 대규모 해고에 나선 것이 그것이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고용을 크게 확대했지만 올 들어 일제히 대량해고에 나섰다. 올해 1월 MS는 비용 절감 등 목적으로 직원 1만명을 해고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올해 1만여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는 2만1,000명,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1만2,000명을 각각 내보냈다. 트위터는 3,700명을 해고해, 수는 적지만 전체 인력 중 50%를 감원해 대퇴사의 선두 자리를 지켰다. 웹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에서 올해만 20만명 이상이 직장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미국의 고용 시장은 대퇴사에서 대해고로 바뀌면서 올해 승자인 미국 경제에 아픈 곳이 되었다.
‘올해의 승자’인 미국 경제에도 돌발 변수들이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더해져 전쟁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도 결코 미국 경제에 득이 되지 않는다. 내년 미국 대선은 미국 경제의 최대 변수가 될 것 같다. 지지율이 저조한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 가능성이 놀은 가운데 결과에 따라 미국 경제의 모습이 바뀔 수 있다. 내년 미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는 까닭이다.
<남상욱 LA미주본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