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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인디언 서머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11-13 14:12:32

에세이, 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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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핼로윈이 되면 춥다. 하루 전날까지 멀쩡하다가도 그날 해거름이 되면 마녀가 장난치듯 기온이 뚝 떨어져서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커스툼을 입은 아이들이 안쓰럽다. 

올해도 그랬다. 얼음이 얼 정도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쫄보 아저씨와 옆집 쫄보 아줌마는 수도관부터 칭칭 감았다. 현관 앞에 있던 다육이 화분을 차고로 집어넣었다. 앞뜰을 통째로 대피시키고 싶었으나 땅에 발을 묻고 사는 꽃나무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밤이 되자 분꽃나무들이 스크럼을 짜며 옆으로 드러누웠다. 서리만 내리면 맥을 못 추는데 올해는 그래도 잘 버틴다 싶었다. 가늘어도 강단 있는 무궁화나무는 휘청거리다가도 이내 균형을 잡았다. 이벤트 회사에서 대형 고스트를 대여해 나래비 세우고, 귀신 곡하는 음악까지 요란하게 틀었던 앞집은 돈 들인 보람도 없이 손님들 발길이 일찍 끊겼다.

날이 밝으니 하루 만에 핼로윈 장식을 거두고 지붕과 나무에 크리스마스 전구를 다는 집이 보였다. 미국 사람들이 그런 쪽으론 참 부지런하다. 밤에 블라인드를 열면 나무에 해골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장르가 호러였는데, 이젠 성탄 빛 덕분에 홀리할 것 같다.

탁상용 달력이 두 장 남았다. 두 장이라는 단위 앞에 ‘이제’라든지 ‘딱’이라는 부사는 쓰지 않을 생각이다. 왠지 아쉬움이나 후회하는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서 말이다. 11월은 시간이 초 단위가 아니라 하루 단위로 흐르는 것 같다. 여백이라곤 돋보기 쓰고 봐도 없을 정도로 달력에 글씨가 빼곡하다. 연예인도 아닌데 어떻게 하면 빈칸이 단 하루도 없을까. 써머 타임을 시작한 뒤론 5시만 되어도 골목이 어둑어둑하다. 해를 도둑맞은 기분이다. 해외여행에 독감까지 앓느라 모든 게 뒤로 밀렸지만, 어찌어찌 그 많은 일을 해내며 감당하는 중이다. 올해 안에 끝내야 할 행사는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요 며칠 추워서 새벽에 일할 때 스웨터에 수면양말까지 신었다. 이러다 겨울로 넘어 가려나 보다 했는데 어제는 화씨 89도였다. 인디언 서머가 돌아온 것 같았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하는 기상 현상으로,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전 일주일 정도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어느 해는 11월 말, 어느 해는 10월 20일, 시기는 달라도 매년 있었는데, 지구가 아픈지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인디언 서머가 좋았다. 여름옷을 다시 꺼내 입게 만들던 그 환장하게 예쁜 날씨. 인디언들은 신의 선물이라 여기며 제사를 지냈다.

2001년에 개봉한 박신양, 이미연 주연의 ‘인디안 썸머’라는 영화를 본 적 있다. 남편 살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선고받은 여자와 그녀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와의 인연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살기를 포기했던 그녀가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그를 보며 마음을 열게 되고 무죄판결을 받아 교도소를 나오게 된다. 우연히 만난 그들은 피고인과 변호사가 아닌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만나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던 그때, 그들이 사랑했던 마지막 여름이 그들에겐 인디언 썸머였다. 살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스스로 사형을 선택했던 그녀의 마지막 미소가 잊히지 않는 영화였다.

가을 끝에 찾아오는 여름같이 뜨거운 계절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누구나 기억하지는 못하는 시간./ 인디언 썸머에 대해서…/ 다만 겨울 앞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 주길 소망하는 사람만이/ 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 인디언들의 태양을 기억한다고…/ 내가 그 늦가을의 기적을 기억하는 것처럼/ 기억하는 동안,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 영화 인디안 썸머 중에서

우리에게도 절망 가운데 다시 찾아온 희망 같은 날들이 좀 더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좋겠다.

<박인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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