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오일 머니’가 세계 스포츠 계를 무서운 속도로 집어 삼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아리비아는 지난 2021년 ‘LIV 골프’를 출범시키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LIV는 사우디 국부펀드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작부터 유명 선수들과 계약을 맺고 높은 상금을 내세우며 PGA를 위협했다.
실제로 많은 PGA 투어 톱랭커들이 LIV 골프 쪽으로 넘어갔는데 브라이슨 디샘보가 여기에 합류하는 조건으로 받은 계약금이 2억 달러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PGA에서 82승을 거두며 받은 상금 총액이 1억2,100만 달러라는 것을 고려할 때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 할 수 있다.
이후 LIV가 PGA를 상대로 제기한 독과점 금지소송 끝에 양측의 합병이 결정됐지만 업계에서는 대부분 사우디의 승리로 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합병으로 출범하는 법인에 대해 사우디 국부펀드가 독점적 투자자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는 곁가지일 뿐,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국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종목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이다. 사우디는 국부펀드를 이용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인 뉴캐슬을 사들이더니 이제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해 유럽의 스타 선수들을 자국 리그로 끌어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수퍼스타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그는 2년6개월 동안 4억 달러를 받기로 하고 알 나스르로 이적했다. 그를 뒤이어 네이마르 주니어와 카림 벤제마, 은골로 캉테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오일 머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우디 리그로 줄줄이 팀을 옮겼다.
현재 사우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수퍼스타는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이다. 일단은 리버풀에 잔류하고 있지만 사우디가 2억5,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내세우고 있는 만큼 그의 사우디 행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축구와 골프를 중심으로 가속이 붙은 사우디의 스포츠 투자는 다른 종목들로까지 급속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 중동지역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가자 지구에서의 군사적 충돌로 극히 어수선하지만 사우디의 공격적인 스포츠 투자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파이트머니가 걸린 복싱 헤비급 매치가 열리는가 하면 UFC 빅카드들도 예정돼 있다. 다음 달에는 테니스 최강자인 노박 조코비치와 카를로스 알카라스의 시범 경기가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다.
그리고 새로운 ‘스포츠 킹’ 사우디의 이러한 공격적인 스포츠 투자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은 2034년 월드컵 유치다. 사우디와 함께 유치를 신청했던 호주가 이를 철회하면서 사우디의 월드컵 개최는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오일 머니’를 무기로 상상할 수 없을 속도와 범위로 세계 스포츠를 장악해 가고 있는 사우디의 행태에 대해 ‘스포츠 워싱’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스포츠 워싱’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 개최를 통해 인권 등 개최국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을 세탁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덴마크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의 경우 민주주의 국가보다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더 많이 개최되는 추세라는 것이다.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도 ‘스포츠 워싱’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그는 최근 폭스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스포츠 워싱이 우리의 국내총생산을 1% 올려준다면 나는 계속 이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사우디가 5년 혹은 10년 내에 세계 스포츠의 ‘파워하우스’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우리가 사우디 축구리그 소식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새삼 ‘오일 머니’의 위력을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