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정숙희의 시선] 안달루시아에서 돌아본 삶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11-08 11:21:42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지난 달 열흘 동안 스페인 남부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스페인은 8년 전인 2015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마드리드를 거친 다음 북상해 리오하 와인산지와 빌바오 등 북부지역을 방문했었다. 당시 산티아고 순례길도 몇 구간 지나면서 묵묵히 걷거나 자전거를 끌며 가는 순례자들을 만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변 풍광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내년 봄 본보 주최의 산티아고 순례 여정에 동참하는 분들은 그 여유로운 사색과 성찰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은 남부와 북부가 전혀 다른 나라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에 그때 남부지방을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안달루시아(Andalusia)로 통칭되는 남부 지역은 8세기 초 아랍무슬림의 침공을 받아 15세기까지 거의 700년 동안 이슬람 통치를 받았던 탓에 그 문화와 예술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 세비야의 알카사르 궁,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대성당 등이 그런 유산을 간직한 대표적 명소들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안달루시아 여행은 그런 관광지 위주의 방문과는 사뭇 다른 여정이었다. 우선 자동차를 렌트해 직접 운전하고 다니면서 보석처럼 숨어있는 소도시들을 많이 찾았고, 골목골목 사람들 사는 동네를 들여다본 것이 인상 깊었다. 관광객 북적이는 유적지보다 한적한 소도시의 카페와 식당, 오래된 교회와 마켓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정에 쫓기지 않는 여행을 즐겼다. 

생판 낯선 곳에서 그렇게 한갓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유창한 스패니시를 구사하는 ‘보헤미안’ 친구 줄리 덕분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사람 좋아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줄리는 스페인 남부를 돈 것만 벌써 5번째, 그저 졸졸 따라다니기만 해도 되는 여행이었다. 

첫 도착지와 마지막 도시만을 정해놓고(비행 스케줄 때문에) 나머지 일정은 “내일은 어디로 갈까?”하고 바로 다음날 묵을 숙소를 예약하면서 돌아다녔다. 비시즌이어서 가능한 일정이었지만 이렇게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안달루시아는 첩첩 산이 많은 지역, 산꼭대기까지 올리브나무와 호두나무, 오렌지와 레몬, 망고 트리가 심겨있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운전하다보면 산 정상이나 중턱마다 점점이 흰 집들이 수백호씩 모여 있는 ‘하얀 마을’(pueblos blancos)들을 만나게 된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때문에 벽을 하얗게 칠했다는데, 접근이 쉽지 않은 고산지대에 마을들이 형성된 이유는 아마도 오래전 무어인들의 침략을 피해 계속 올라가면서 정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지금은 이런 곳의 상당수가 관광객들이 찾는 예쁜 마을로 변신했다. 오르락내리락 골목마다 붉은 지붕과 하얀 벽, 담벼락에 걸린 꽃 화분들이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마을들이다. 

그라나다, 몬테프리오, 빌라누에바, 프리힐리아니, 네르하, 안티케라, 론다, 산루카, 세빌을 돌았다. 그리고 스페인의 땅끝 도시 타리파에서 이틀 머물면서 바다 건너 모로코 탠지어(탕헤르)에도 다녀왔다. 유럽의 최남단인 타리파 해변에 서면 북아프리카 대륙이 바로 코앞에 보인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베리아 반도와 아프리카의 거리가 불과 14km, 신화에 따르면 두 대륙은 붙어있었는데 헤라클레스가 지나가려고 맨손으로 두 땅을 벌려놓았단다. 배를 타면 1시간도 안 걸려 탠지어에 도착한다. 배 안에서 입출국 수속을 거쳐야해서 번거롭지만 그래도 하루 모로코 시내를 거닐며 아프리카 땅을 밟고 왔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유럽이 모두 그렇듯 스페인에서의 운전이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대도시는 도로가 너무 좁고 복잡한데다 파킹이 힘들어서 아예 세워놓고 걸어다녔다. 숙소를 시내 중심에 잡고 거의 모든 곳을 걸어서 다녔다. 하루 1만보는 우스울 정도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니 많이 먹었다고 살찔 염려는 할 필요도 없었고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줄리가 “우리 LA에서 뭔가 잘못 살고 있는거 아냐?”라고 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LA의 풍경을 떠올렸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여도 차를 타고 다니는 뚱뚱한 사람들, 물가는 비싸고 홈리스는 늘어나고 자나깨나 범죄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곳. 총격사건이 매일 터지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일상에 지쳐 더 이상 웃지 않는다. 큰집에 사는 사람도, 럭서리 차를 타는 사람도, 명품 패션으로 치장한 사람도, 행복한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다.

안달루시아 사람들은 친절하고 많이 웃었다. 뚱뚱한 사람은 없고, 물가는 비현실적으로 쌌다. 진한 커피 한잔에 1.50유로, 맛있는 와인 한잔에 5유로, 음식은 타파스 한 접시에 10유로도 안 됐다. 팁을 놓지 않아도 되고 조금만 주어도 고마워하는 나라, 어디가나 커피와 와인이 너무 싸고 맛있어서 매일이 즐거웠다.

타리파의 한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네덜란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IT 종사자인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음 내키는 곳에서 몇 달 혹은 몇 년씩 살고 있는데 아프리카가 가장 좋다고 했다.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는데도 제일 많이 웃고 행복해 한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나미비아가 가장 아름답고 자유로워서 그곳에 정착할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러자 지난 20년간 중미 니카라과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줄리 역시 그곳 사람들의 무공해 미소를 이야기했다.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캘리포니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웃는다며 우리는 많이 갖고도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포르투갈로 넘어가 여행을 계속하는 줄리와 헤어져 혼자 LA로 돌아오면서 계속 생각했다. 나는, 우리는, ‘세계최고의 나라’ 미국에서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수필] 빈 잔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다
[수필] 빈 잔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울 수 없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도대체 왜 이래요?”점심시간,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접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강 할머니가 계신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서브디비전 주택, 편리함 뒤에 숨은 규칙과 보험의 차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서브디비전 주택, 편리함 뒤에 숨은 규칙과 보험의 차이

최선호 보험전문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혼자보다 함께 살아갈 때 더 많은 편리함과 안전을 누리게 된다. 미국 주거 문화에서도 이러한 공동체 개념이 잘 드

[애틀랜타 칼럼] 목표가 있어야 행운도 있다

이용희 목사 행운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란 커다란 지도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당신이 아직도 행운을 잡지 못한 것은 명확한 인생의 지도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독자기고] 저물어 가는 미 제국의 패권
[독자기고] 저물어 가는 미 제국의 패권

김대원(애틀랜타 거주) 4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선언했으나 6주가 지난 지금 전쟁의 양상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라

[법률칼럼] 학생비자 심사 강화, ‘재정’이 핵심이 된 이유

미국 학생비자 심사 기준이 자금의 액수보다 '재정의 신뢰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강화되었다. 영사과는 단순 잔액 증명 대신 자금의 형성 과정과 지속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며, 특히 인터뷰 직전의 거액 입금이나 불분명한 제3자 지원은 거절 사유가 될 수 있다. 성공적인 비자 취득을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자금 흐름 확보와 학교 선택의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통합적인 준비가 필수적이다.

[행복한 아침] 흐르는 것은

김 정자(시인 수필가)         한 낮 기온이 여름으로 들어선 것 같은 한나절, 처타후치 강변을 찾았다. 강줄기는 넓은 강폭 따라 잔잔한 물결을 일구며 흘러가고 있다. 강 자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3)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3)

“재정전문가도 결국 SSA 공식자료로 돌아가야 한다” 천경태 (금융전문가) •공식 확인일: 2026년 3월 30일 (자료 출처: Social Security Administrati

[신앙칼럼] 호르무즈와 예수 그리스도(Hormuz and Jesus Christ, 요한복음 John 20:31)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요한복음 20:31의 생명으로 영적 제해권(制海權)을 선포하라 호르무즈와 예수 그리스도(Hormuz and Jesus Christ)는 ‘

[삶과 생각] 미쉘 강 후보
[삶과 생각] 미쉘 강 후보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4월 21일 청담에서 미쉘 강 후보 후원회가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다.지난 선거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안타깝게 석패한 미쉘 강 후보가

[추억의 아름다운 시] 생명은 하나의 소리

조병화 당신과 나의 회화에 빛이 흐르는 동안그늘진 지구 한 자리 나의 자리엔살아 있는 의미와 시간이 있었습니다. 별들이 비치다 만 밤들이 있었습니다.해가 활활 타다 만 하늘들이 있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