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구상이 올해 10주년을 맞은 가운데 서방국가들도 대항마 건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0월 25~26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글로벌 게이트웨이’ 첫 포럼을 개최했다. EU는 글로벌 게이트웨이를 통해 광물·그린에너지·운송 분야 등에서 아시아·아프리카 정부 등과 690억 달러가량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EU가 2021년 발표한 글로벌 게이트웨이는 회원국 정부와 민간 기업, 금융기관 등이 2027년까지 3,000억 유로를 역외 인프라 건설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유럽의 공급망과 역외 투자를 확대하고 중동·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선 미국의 견제 카드는 ‘인도·중동·유럽경제회랑(IMEC)’이다. 미국은 중동·아시아·유럽을 철도와 항만으로 잇고 전력 등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하는 국가들을 단일 경제 벨트로 묶으려 하고 있다. 미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상 등은 올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IMEC 출범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서방국들의 원대한 구상이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돌발 변수를 만나 차질을 빚고 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중동 평화 등이 선결 과제이지만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중동 지역에서 반미 정서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EU 내에서도 난민 유입 증가, 재정 부담 등의 우려에 글로벌 게이트웨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늘고 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중국 정부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균열을 내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까지 ‘두 개의 전선’이 생기면 미국의 관심사와 외교자원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중동 사태 확산이 국제 역학 관계와 한반도 안보에 몰고 올 파장을 유의해야 한다.
<최형욱/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