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과 미국 대표팀이 경기를 할 때면 한인가정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이민1세 부모들은 한국팀을, 2세 자녀들은 미국팀을 응원하면서 세대가 갈라졌다. 부모들은 수십년을 미국에 살아도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한국이 ‘우리나라’이고, 자녀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시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K 팝, K 드라마, 한식 등 한국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받으면서 한인 2세들의 민족적 자부심이 높아졌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단순히 미국시민이 아니라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규정하는 추세이다. 한국 대 미국 경기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한국팀을 응원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코리안 뿌리가 주는 연결감이 강해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응원의 대상이 운동경기가 아니라 전쟁이라면 어떨까. 동족에 대한 염려와 지지가 운동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심대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한 달을 넘기면서 미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작게는 유대인 커뮤니티 대 팔레스타인 커뮤니티, 크게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인들과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인 미국인들이 미 전역에서 충돌하고 있다.
유대인 커뮤니티의 많은 이들에게 이스라엘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동족의 일이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기습공격으로 1,400여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죽게 하고, 240여명을 인질로 끌고 간 잔혹함에 이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유대인 파워 막강한 미국에서 정부는 이스라엘 편. 그에 대한 반발로 반유대주의가 거세지고 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커뮤니티는 어떠한가.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이미 1만명을 넘어섰다. 하마스 대원들이 민간인 거주지역에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이스라엘 측은 무차별 폭격을 정당화하지만 사망자 대부분은 민간인들, 그 중에서도 어린이들이 4,100여명에 달한다.
사태가 이러하니 팔레스타인계는 고국의 가족친지들 걱정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민간인과 테러집단 구분 않고 잔인하게 폭격하는 이스라엘 군에 대한 분노, 이스라엘의 횡포에 숨도 못 쉬고 사는 동족에 대한 연민… 팔레스타인계 시민들의 비통함은 깊다. 한 연방하원의원이 그 비통함을 드러냈다가 지금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미시건의 라시다 틀라이브(민) 연방하원의원이 그 주인공. 팔레스타인 이민 2세로 팔레스타인 계로서는 유일한 연방의원인 그는 이번 전쟁 발발 후 친 팔레스타인 시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연설 중 ‘강에서 바다까지(From the river to the sea)’라는 구호를 언급한 것. 팔레스타인인 권리옹호 시위에서 자주 나오는 이 슬로건은 요르단 강에서 지중해까지 이르는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 싶은 그들의 열망을 담고 있다. 열망이 실현되려면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사라져야하니 이스라엘에 대한 폭력 촉구라고 이스라엘 측은 반발한다.
이 슬로건과 관련, 틀라이브에게는 공화당은 물론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유대인 의원들과 친 이스라엘 의원들로부터 폭력을 부추겼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자유와 인권, 공존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염원을 담은 구호일 뿐”이라고 트위터로 해명했다.
몸은 멀리 떠나 살아도 마음은 모국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이민자들의 숙명이다. 유대인 커뮤니티, 팔레스타인 커뮤니티 모두 동족에 대한 걱정으로 이 가을에 많은 이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