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월28일은 매우 추웠다. 그날 환자들을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게 하고 간호사, 사회복지사들과 오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스페이스 셔틀 챌린저 우주선 발사 장면을 보고 있었다. 우주선이 동부시간 오전 11시39분 플로리다 케이프 캐너버럴에서 발사된 후 73초 지나자 TV 화면에 강아지 꼬리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금 후 4만6,000 피트 상공에서 우주선이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 사망이란 참사 뉴스가 뒤따랐다. 모두 놀란 나머지 “오 마이 갓” 한숨 쉬었던 기억이 난다.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궤도에 정상적으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린 우주선의 단명이었다.
물리적 궤도는 한 물체가 중력에 의해 다른 물체 주위를 타원형으로 도는 자리 길을 뜻한다. 궤도를 벗어나면 물체는 곤두박질을 한다. 우리의 삶도 사고나 충격 같은 심리적 중력에 떠밀려 인생이란 궤도를 돌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생궤도는 영유아기인 생후 3년 동안에 자리를 잡아간다. 이 시기엔 몸과 두뇌가 아주 빠르게 발달하는 인생의 기초공사 기간이다. 또한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때이기도 하다. 부모나 양육자가 제때 먹여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따뜻한 신체접촉과 환한 웃음을 웃어주는 좋은 보살핌은 아이의 두뇌를 발달시키고 정서적 안정을 주어 긍정적 애착형성이 이루어진다.
좋은 애착관계는 또한 두뇌의 잠재력을 자극하여 언어, 인지, 사회성의 발달을 촉진한다. 좀 불려 말하면 영유아기가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는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다. 뇌 신경세포는 엄마 자궁 속에서 임신 5-6개월쯤에 생성되기 시작하여 출생 시에는 성인과 비슷한 1,000억개 가량 만들어진다. 하지만 뇌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은 성인의 15% 밖에 못 미친다. 성장하며 주위환경과 상황에 자극을 받아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후 3세까지 뇌세포 연결이 빠르게 형성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인 불안과 우울은 이제 청소년기, 아동기에도 나타난다. 이는 영유아 발달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려서 애착형성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후에 정체성 혼란, 감정조절 문제가 생기고 바람직한 인간관계 유지에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소속감이 부족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생을 상처 받은 영혼으로 살아가기 싶다. 심리적 중력이 너무 강한 경우 현실의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지 못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발생한다.
“삶이 아프고 힘든가요? 함께 세상 떠날 사람 찾습니다.” 한국의 어느 초등학교 6학년생이 자살카페에 올린 문구다. 한국 청소년 3명 중 1명이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충동이 있다고 들었다. 자살충동은 스트레스와 불안증,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흔하다. 그들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짐만 되며, 앞으로도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 생각에 잠겨있다.
파란색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파란색이다. 부정적 생각이 계속 뇌에 전달되면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뇌가 실제로 세상은 파란색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래서 자살충동을 동반한 우울증 치료는 항우울제 처방과 인지치료를 함께 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젊은 현대인들은 많이 지쳐있다. 그들은 넉넉한 포켓머니를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재는 척도로 본다. 진짜 행복감을 주는 내면의 행복감은 텅 비어있다. 하지만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그 다음 일이라고 떠넘긴다. 어쩌다 앞이 잘 안 보이면 좌절과 절망에 빠진다. 그들의 휘어진 인생궤도를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는 긍정적 마인드와 회복 탄력성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 집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 기술자를 불러야 하듯 영혼이 망가지면 영혼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교회, 성당, 사찰도 좋고, 임상심리사나 정신과 전문의 오피스도 좋다.
조그만 고무 패킹 하나가 추위로 얼어붙어 우주선 참사를 불렀듯 하찮은 마음의 상처를 내버려두면 영혼이 곪아터져 자살을 부추긴다. 삶을 인생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만들고 만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