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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의 하프타임] 경계해야 할 '역치 상승'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10-03 13:24:35

조윤성의 하프타임,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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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그리고 진보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는 ‘위선의 이미지’다. 현실정치에서 도덕성 시비가 일어나게 되면 대개 진보가 수세에 몰린다. 어떤 경위로 “진보는 곧 도덕성”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의 범법과 일탈에는 즉각적으로 ‘위선적’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한층 더 혹독한 비난과 비판이 뒤따른다.

지난 4월 한국에서는 이른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터졌다. 송영길 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되었던 2021년 5월 전당대회에서 여러 의원들에게 불법 자금이 건네져 정치자금법과 정당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민주당은 이미지와 지지율에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 비슷한 시기 국민의 힘 소속 여성 정치인 두 명이 공천을 빌미로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이 스캔들은 언론의 외면 속에 별다른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자 민주당은 “불공평하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당신들이나 잘 하라”는 면박이 돌아왔을 뿐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겠지만 이것이 정치현실이고 민심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상대방보다 더 청렴하다거나 깨끗하다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마음을 잡을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더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내세웠다가 행여 그런 기준에 맞지 않는 행태를 보이게 되면 즉각 강한 역풍을 맞게 된다.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는 위선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낸다. 아예 대놓고 하는 나쁜 짓은 묵과할 수 있어도 위선은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예측이 유력했던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의 발목을 잡은 것도 위선의 이미지였다.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로 공문서를 주고받은 것과 자신의 재단을 둘러싼 의혹 등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정직성에 대한 의문이 결과적으로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면 상대인 트럼프는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승리를 거뒀다. 오래 전부터 온갖 추문과 말썽의 중심에 서 있던 트럼프에게 스캔들은 악재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자석의 역할을 해주었다. 트럼프에 대해서는 “본래가 그런 인간”이라는 대중의 태도면역이 이미 오래 전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현재 가장 유력한 내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이다. 여러 건의 형사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당내 지지도는 압도적이다.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인 악시오스(axios)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트럼프에 대해서는 대중의 ‘역치’(threshold)가 아주 높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역치’는 “일정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자극의 강도”를 의미하는 신경과학 용어이다. 이것이 높다는 것은 반응을 일으키는데 그만큼 더 많은, 그리고 더 큰 자극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같은 크기의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역치가 올라가 더 큰 자극을 주기 전에는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

별로 길지도 않은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 반 동안 한국정치는 급속한 퇴행을 겪어왔다. 계속되는 인사 참사와 대통령 처가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철지난 이념전쟁 등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 각종 재난과 재해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분명한 인재(人災)임에도 그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때마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듯 “가용인력과 자원을 적극 활용하라”는 대통령의 기계적 지시만 있을 뿐이다.

또 대법원장과 장관, 그리고 방통위원장 등 새롭게 지명된 인물들을 보면 정권초기 인사논란으로부터 배운 게 전혀 없는 듯 보인다. 어디서 이렇게 시대착오적이고 하자 투성이인 인물들만 쏙쏙 골라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처음에는 국민들의 질문에 답도 하고 논란에 고개를 숙이는 시늉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론은 개의치 않은 채 일방통행과 철저한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의 저변에는 갈수록 무덤덤해지고 무감각해진 국민들이 있다. 권력의 퇴행에 대한 역치가 날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적 행태들이 반복되다보니 많은 국민들은 점점 더 ‘그러려니’ 혹은 ‘그런가 보다’할 뿐이다. 그러면서 정치혐오 정서는 확산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념보다 민생이 중요하다”고 외치던 윤 대통령이 뜬금없이 ‘이념전쟁’을 시작한 데는 자신의 골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 이런 정서를 부채질하면 정치적으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

권력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는 역치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국민들이 권력의 아주 작은 일탈에도 민감해져야 한다. 그래야 권력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역치가 점차 높아지면서 형성되는 면역이 신체의 건강에는 바람직할지 몰라도 사회와 국가의 건강에는 대단히 유해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조윤성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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