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한국 동창들과 줌 통화를 하고 난 다음 갑자기 밀려드는 격세지감에 한 동안 마음을 앓다가 좀체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는다며 전화를 주신 지인과 긴 시간 마음을 나누었다. 어느 분은 손자의 방황에 도움이 되지 못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시느라 한참을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하소연인지 질문인지 분간 못할 전화를 받다 보면 나란한 맥이 보인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것과, 나 자신으로 살아지고 싶다는 몸부림을 보아달라는, 누구에게든 알리고 싶다는 넋두리가 주류를 이룬다. 어찌 들으면 외줄기 비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금 겪고있는 난제들을 내 부모도 겪었을 터이요, 내 자녀들도 동일한 어려움에 놓일 가능성을 안고 있다. 남자들은 스스로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했다며 한탄하고, 맞벌이 하는 지친 엄마들은 자신을 잃어버린 삶이라는 고백을 듣게 된다. 역할에 충실하려는 강박감, 책임감에 도망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로, 남편, 며느리, 부모로 사느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잊은 지 오래라고. 유독 민족 특유의 우리 가족, 우리 남편, 우리 아이에 우리나라까지 우리라는 개념이 반영된 탓이려니 하고 미루어 생각해 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자신할 수 없는 법이다. 오늘 만족하다 해서 내일까지 보장할 순 없는 것이 인생살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온전히 나만의 노력이나 의지였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도 돌아보면 본연의 자발적, 의식적으로 내적 욕구를 비롯해 도덕적 가치 평가에 이르기까지 내 뜻대로 살아온 여정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라’ 하신 현자의 말이 떠오른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앞에서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닿을 때 마다 감사 표현만으로도 얼마든지 긍정의 마음 평정을 샘솟게 한다. 어느 인생이든 크고 작은 부족 함을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러한 부족함이 드러날 때, 비난하거나 비판이나 비평을 하기 보다 격려 차원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 주며 고양되도록 응원해주며 서로를 고취시킬 수 있는 온기를 서로에게 허락하는 세상을 위해 함께 앞장서면 어떨까.
인생이란 자신감만으로는 지탱되기 어렵다. 오늘에까지 흘러온 여정이 모두 내 것이었던가 두 눈 부릅뜨고 자신을 추스르며 달려왔다 한들 내가 바라보며 소원해왔던 삶이 전개 되었던가. 내 계획과 결심대로 누려지는 세월이었던가. 노상 밤낮으로 오직 가정을 위해, 자녀를 위해. 늘 내일의 꿈을 위해 달려오지 않았던가. 지금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순간이란 공간 속에선 오직 내 자아만이 오롯이 눈을 깜박이고 있지만, 이 순간을 벗어나면 삶을 돌아보게 되고 준비된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 것이 삶이란 정의로 성립된다. 눈 한 번 끔벅하면 이순이요, 칠순이요, 산수를 넘어서 버렸네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백세 시대가 도래 했다지만 이 또한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이 아닌 손가락 꼽듯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이다. 갈무리하듯 하루들을 감사와 평안으로 누림 할 수 있는 보람을 안고 보내다 보면 중후한 생을 거둘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오늘 하루 만큼씩만 감당해 낼 수 있는 긍정의 열린 마음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의미있는 삶을 위한 작은 실천들이 저만치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생애의 흐린 날을 겪고 계신 분들의 푸념이나 하소연을 들어줄 때면 줄곧 나누는 말이 있다. 햇살이 눈부신 날보다 오히려 흐린 날이면 만상이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 마냥 삶의 흐린 날은 밝은 날을 위한 예행 리허설로 삼을 수 있는 기회로 주어진 것으로 삼자고 격려와 권유를 드리게 된다. 어스레하고 침침해지는 일몰 잔영처럼 어느새 생은 옅은 어둠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땅거미가 내려 앉으면 어둠을 밝혀줄 불빛이 낭자해질 터이지만 허전함과 처량함이 쓸쓸하게 몰려들어 차분하지 못한 동요가 불안정을 부추기는 것이 세상살이다. 노을처럼 생의 가장자리 경계에 서 버렸다는 긴박감은 착잡한 침울로 쉽게 낙담하고 참담한 음침으로 쉽게 기가 죽기도 하지만 다행인 것은 살아온 내력이 받쳐준 혜택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들어주는 일에도 버선발로 나서기도 하면서 저만치 앞장 서 있기도 한다. 그럴 수도 있지가 쉬워지고 대화 중에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더 깊이 찬찬히 피력하게 된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조금은 더 성취할 수 있었는데, 따위의 바램은 부끄러움으로 숨기려 한다. 마음 분진을 닦아내며 맑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견식을 넓혀가며 설령 덜 떨어졌다 질타를 받아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놓치지 않으며 조금은 팔불출이 되더라도 욕심 없음을 자랑으로 간직하고 싶다. 매일 매일의 작고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해가며 지금까지처럼 마음을 깊은 곳에 두며 정돈된 사념을 품고 맑은 언어를 구상하며 평화롭고 고요한 노년으로 흘러가고 싶은 사념에 잠기곤 한다.
햇살이 빛 부시는 날보다 흐린 날이면 햇살의 눈부심으로 하여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주위가 더 맑게 보일 때가 많다. 많은 사람 오가는 이방 거리에서 사느라 지쳐 숨어버리고 싶을 때도 흐린 날이 알맞을 때가 있다. 기다림으로 지쳐갈 때 외로움으로 가슴 아플 때에도 흐린 날이 좋았고, 하늘 우러러 고인 눈물 감출 때도 흐린 날이 더욱 좋으니, 그리움 끝에 와서 이젠 나를 열어 보이며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이 흐린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