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유럽에서는 먹을 것, 입을 것, 신을 것 모두가 부족해졌다. 특히 수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하면서 붕대·솜·거즈 등 치료에 필요한 의료용품이 턱없이 모자랐다. 붕대 등을 대신할 제품을 만들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직감한 유럽·미국 기업들은 대체 물자 개발에 몰두했다. 그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신제품을 선보인 회사는 미국의 제지 업체 킴벌리클라크였다. 킴벌리클라크는 1917년 소량의 솜과 나무 펄프 섬유소를 이용해 ‘셀루코튼’이라는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재는 흡수력이 면보다 5배나 우수하지만 가격은 더 저렴해 전쟁터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셀루코튼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재고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재고 처리를 고민하던 킴벌리클라크는 1924년 셀루코튼을 종잇장처럼 얇게 만든 미용 티슈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여성들이 화장을 지울 때 손수건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대체할 일회용 종이를 착안해낸 것이다. ‘화장지의 대명사’처럼 여겨져온 ‘크리넥스’는 이렇게 탄생했다. 크리넥스라는 브랜드명은 당시 회사 소유주였던 ‘바버라 크리넥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세계 화장지 시장을 주도해온 크리넥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킴벌리클라크는 최근 성명을 내고 “캐나다에서 크리넥스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킴벌리클라크의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북미 지역에서 발생하고 캐나다는 미국 다음으로 매출 비중이 높다. 회사 측은 구체적인 철수 배경을 밝히지 않았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캐나다 화장지 시장에서 크리넥스의 점유율은 16.2%에 그쳐 1위인 스카티(35.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3위인 로열화장지(15.9%)에도 추월당할 위기다. 스카티는 캐나다 제지회사인 크루거 프로덕트의 제품이다.
크리넥스가 곤경에 처한 곳은 캐나다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현지 업체의 거센 도전과 자체 화장지 브랜드로 무장한 월마트·코스트코 등 대형 마트들의 공세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들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남보다 앞선 기술과 제품을 갖춰야한다. 규제 혁파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