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자(시인 수필가)
하루 일상의 시작은 식사준비에서 시작된다. 매일 설거지하고 치우고 닦기를 번복해도 그리 표시가 나지 않는데 며칠만 손을 놓으면 당장 뒤죽박죽에 난장판 일보직전까지 가게 된다. 어차피 내 몫이라 습관적으로 해치우지만 가끔씩은 마음 먹은 대로 안될 때도 더러 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아침에 눈길에 거슬렸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망설이면 지는 것이다. 무조건 내용물을 차곡차곡 꺼내 놓고 볼 일이다. 먼저 세제를 사용해서 청소부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간간히 울리는 할매의 거친 숨결이 신음에 가까울 만큼 들렸나 보다. 우리집 할배가 놀란 눈으로 무슨 일이냐고, 이렇게 일을 벌릴 계획이었다면 얘기를 하지 그랬냐고. 무슨 일을 저지르다 들킨 것 마냥, 당황스럽다. 막상 시작해 놓고 보니 체력이 어제 같지 않다. 아뿔싸. 이렇게 벌여놓고 보니 수습할 길이 멀다. 나도 모르게 SOS가 발신 되었다. 그럭저럭 무사히 냉장고 문을 닫게 되면서, 해야 할 것들을 메모해둔 수첩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 목록이 빼곡하게 기록된 수첩이 화근이었을까. 수첩 기록에는 정기적 냉장고 청소가 기록되어 있지만 눈에 거슬리는 순간은 피할 수 없음이었다.
이유 없이 부대끼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는 멍 때리기로 구름이 유유히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구름도 어디로부터 흘러와서 어디로든 흘러가는 것인 데 과연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나. 인생 여정 마지막 역사(驛舍)로 들어서는 생의 후반기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람 있게 가꾸어 가야 할지를 번번히 주시해오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고심하며 주목해 왔다. 해야 할 일은 의무와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현모양처를 푯대 삼으며 여편네 노릇, 부모 노릇, 집안 챙기며 사는 동안 진정 하고 싶은 일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갔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선별하는 것도 도전이다. 생의 버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긴 했지만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은 쉼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스티브 잡스 어록 중 하나다. 무엇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어릴 적 나비를 좇아 뒷산을 헤맸던 순수 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인데.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도 욕심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일들을 못할 만큼 소망하고 꿈꾸어 왔던 일들을 잠시 미루어 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돌아보는 일들이 오히려 삶의 여유로 다가온다는 역설이 성립 된다. 그렇다. 하고 싶은 것은 다시 없을 지금을 사는 것에 비유할 수 없는 것.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어차피 할 일을 다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이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남긴 말들 중에는 ‘하고 싶은 일에 목숨을 걸었다’ 는 말들을 했다. 하나 뿐인 목숨을 걸지 않고 되는 일은 과연 없을까.
결과는 상관없다. 남은 시간을 오롯이 생의 마지막 촛불로 삼을지니, 건널목에서도 신호등이 바뀌면 부지런히 길을 건너야 한다. 주저하거나 망설이면 사고가 유발된다. 건널목도 건너지 않고 쉬운 길만 택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 나는 것이라는 지론을 굳게 붙들고 살아 왔다. 매일 같은 생각, 습관을 되풀이 하는 사람은 틀에 박혀 벗어날 줄을 모른다. 낡은 것으로부터, 묵은 것으로부터, 비 본질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순간순간 느끼게 되는 이룸의 기쁨이 삶의 용기를 촉발해 주었고, 지금까지 다듬어온 소중한 삶이 유실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이 빚어내는 소음 속에서도 나직하고 차분하게 내면세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수첩 목록 작성을 다시 바로잡고 지우고 더하기를 해본다. 신앙과 문학의 성숙을 위한 리스트가 갈수록 폭을 넓히고 있다. 남은 생애동안 하고 싶은 리스트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다. ‘ To Do LIST ’ 목록 나열이 재 구성 되었다. 이렇듯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들을 재구성 하다 보면 이루어진 복 들을 세어 보며 조금은 뒤꿈치를 추켜 세울 수 있을 만큼의 감사가 늘어날 것이다.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춘, 의식이 깨어 있는, 생각 깊은 자신과의 만남을 예상해 보면서, 이렇 듯 주어진 남은 시간을 재구성으로 재현해 보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롭다. 세월에 실려가는 은발의 나이 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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