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도에 수년간 천문학적 액수의 투자를 진행했고 인도 내에만 글로벌 제품을 만드는 1만여 명의 엔지니어를 두고 있습니다.”
22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멀티 클라우드 기업 VM웨어의 라구 라구람 최고경영자(CEO)가 전 세계 취재진 80여 명과 진행한 미디어 간담회. “인도에 대한 투자 계획은 어떻습니까.” 기조연설을 통해 발표한 엔비디아와의 협업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디아타임스 기자의 질문을 시작으로 인도에 대한 연구개발(R&D) 상황, 인도 회사와의 파트너십 등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라구람 CEO는 “인도는 매우 건강하고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며 인도 내에서 VM웨어의 존재감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2인자로 꼽히는 수밋 다완 사장도 “인도의 공공 부문 시장은 가장 큰 주력 분야 중 하나”라며 “인도 국립결제공사가 개발한 즉시 결제 시스템인 UPI 인프라 등의 디지털 전환을 협업하는 등 성공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인도 시장은 가장 구체적인 협업 사례들이 발표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였다. 주변 기자들도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했다.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행사에 수년간 참여해온 뉴스택 창업자 알렉스 윌리엄스는 “인도 인력들이 미국 테크 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인도 시장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기류가 달라졌다”고 언급했다.
‘실리콘밸리 CEO 최대 수출국’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인도계 인재들의 활약을 언급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다. VM웨어의 라구람 CEO와 다완 사장도 인도계 미국인이다. 둘 다 인도 최고의 명문 대학인 IIT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한 뒤 테크 기업에 입사하는 1세대 이민자 코스를 밟았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경영전략에도 강점이 있다. 라구람 CEO는 VM웨어 기업공개(IPO) 당시 이를 지휘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다완 사장 역시 웹앱 보안 기업 인스타트의 CEO로 수익성을 높여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 아카마이에 인수되는 데 큰 공로를 인정받아 VM웨어로 재영입됐다.
이렇다 보니 인도인들에게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특별한 곳으로 꼽힌다. 1917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이민자들의 이민을 엄격히 제한한 이민법이 통과되기 전 3,000여 명의 인도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샌프란시스코 에인절아일랜드를 통해 입국했다. 이후 이들은 인도 본토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을 시도할 때 후방에서 든든한 지원군으로 큰 역할을 했다. 100여 년 뒤 실리콘밸리는 인도인들이 저마다 기술과 능력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곳이 됐다. 1970~1980년대 미국 유학 후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창업한 비노드 코슬라와 핫메일을 만든 사비어 바티아가 개척자라면 이후 실리콘밸리를 베이스캠프로 삼은 인재들의 무대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 미국 정가가 있는 워싱턴DC와 아카데미아의 정점에 있는 보스턴에서도 이들의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인도계 미국인 최대 단체 중 하나인 ‘임팩트’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00년만 해도 5명의 인도계 미국인이 선출직으로 임명됐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176명까지 늘어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처음으로 최고기술자(CTO)로 인도계 미국인인 낸드 물찬다니를 임명한 것도 이들에게는 큰 성과로 꼽힌다.
이전에는 인도가 인재들을 공급하는 일방적인 관계를 형성했다면 미중 간의 지정학적 갈등과 더불어 인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서로 아쉬운 관계’가 됐다는 점이 큰 변화다. 인재와 네트워크, 시장 성장의 3박자가 만나자 인도는 유일무이한 대안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 세계 기업이 인도 시장을 향하다보니 인재들도 미국 진출 외에 본토에서 저마다의 경쟁력을 키우는 선택지가 생긴 것도 큰 변화다. 이로 인한 성과가 달의 남극에 처음으로 착륙한 인도의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많은 인도인이 찬드라얀 3호의 성공에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현혹되는 대신 달을 봐야 할 이유다.
<정혜진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