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 아득한데 기약이 없어/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가”
김성호 테너가 영국 BBC 카디프 국제 성악 콩쿠르의 가곡 부문 우승을 하면서 부른 ‘동심초’의 노랫말이다. 이것은 중국 당나라 때의 기생이며 시인인 설도의 시를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이 번안한 것이다. 이 가곡에서 느껴지는 깊은 슬픔과 무어라 알 수 없는 사랑은 현실의 번뇌에서 벗어나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삶의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의 감정은 자기 환상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 환상은 사회적 가치의 고정관념과 남녀라는 육체적 본능과 과거의 경험과 지식의 기억으로부터 일어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업(karma)이라 한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그 환상은 쉽게 깨지고 한순간에 미움이 되기도 한다.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면 사랑했던 그 사람은 현실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 해도 이 시는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이다.
‘동심초’의 배경이 되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도 불교의 관점에서는 번뇌이다. 번뇌라는 뜻은 실제가 아니며, 근원적 사랑이 아니며, 행복이 아닌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랑이 쓸데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대한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말은 “신은 사랑이고 사랑은 신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랑은 인간에서 애정(affection)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잠이 덜 깬 아이와 같은 상태에서 경험하는 사랑일지라도 그것은 영원한 진리의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으로서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한편 이 시가 천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감동을 일으키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존재가 무상하다는, 지나간 것은 다시 올 수 없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근원적 슬픔과 대비되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본래 지니고 있는 사랑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불교의 가르침은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간다.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에 대한 근원적 깨달음의 지혜이며, 그 지혜는 자비(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모든 존재를 내 몸같이 생각하는 한마음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 자비심은 우리 마음에 본래 있는 것인데 번뇌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의 피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은 자기중심적 번뇌를 떠나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일시적으로 느끼게 하여 이 사랑의 노래는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
꽃잎이 바람에 지듯이 뜬구름 세월 덧없는 우리의 삶은 슬픔이다. 우리의 몸은 잠시 있는 듯 하다가 흩어져 사라지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집착한다. 이것이 모든 환상의 시작이며 괴로움의 뿌리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슬픔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데서 일어난다. 이 가곡을 들으면 이러한 근원적 슬픔을 느끼며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우리의 아름다운 정서가 담긴 말로 노래한 ‘동심초’는 나의 세계에서 깊은 감동으로 울리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원공 스님 한마음선원 뉴욕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