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뉴스를 보니 학습시간에 학생이 휴대전화를 두번이나 보고 있어서 선생이 그 학생의 전화를 빼앗거나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한다. 그래서 이제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며 말 안 듣는 학생을 교실에서 나가도록 하는 권리를 선생에게 주자는 취지의 시행령을 검토한다는 기사였다.
나의 시절에는 이렇게 말을 안 듣는 학생에게는 대부분의 선생들이 커다랗고 두터운 출석부로 머리를 내리치거나 아니면 뺨을 때리곤 했다. 학생의 버릇을 고친다는 것보다 말을 듣지 않으니 선생들은 권위에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리했었고 또 학생들은 그러한 선생의 폭력(?)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어떠한가, 하고 손자손녀에게 물어보니 때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그런 학생이 있다면 정신병환자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학교에서 상담을 하거나 부모에게 통보를 한다고 한다. 내가 손자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때려야한다고 하니 나를 마치 깡패나 서부 개척시대 사람인 양 쳐다보았다.
오늘 한국 뉴스를 보니 천재 소리를 듣고 있는 백모라는 과학고 1년생이 학교폭력 때문에 자퇴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그것이 너의 뜻이라니 그리하라고 했단다. 백모 군이 몸무게가 27킬로에서 22킬로로 5킬로가 빠졌다 한다. 그렇다면 그의 담임교사는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을까. 혼자 상상해보자니 아마도 담임교사나 어쩌면 교장까지 그렇게 뉴스의 각광을 받는 학생의 자퇴 소식에 학교 이미지가 손상될까 두려워 자퇴를 말리고 괴롭힌 학생에게 사과를 해라, 화해를 해라 등등 했을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이라면 어떠하였을까? 대부분의 선생이 그 괴롭힌 학생에게 “네가 깡패냐”하며 출석부로 때렸거나 아니면 뺨이라도 때렸을 것이다. 좀 점잖은 선생은 화장실 청소를 2주 정도 시켰을 것이고 어떤 선생은 두 학생을 교단에 세우고 괴롭힘 당한 학생에게 괴롭힌 학생의 뺨을 10대 때려라 하고 대충 때리면 “야, 더 세게 때려!”하며 진짜 아프도록 때리게 했었다.
이러한 것이 당시 해결 방법이었고 아무도 불평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 학폭이란 단어조차도 없었고 어느 학부형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자살? 그런 일은 없었다.
그 시절 그런 방법이 옳다고 생각 하는 내가 구세대 사람인가? 화성에서 온 사람인가? 이렇게 해결해오던 시절의 사람들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는데 이제 미래의 젊은이들을 과잉보호로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영묵/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