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탕 열대성 저기압이 불러온 폭풍우가 남가주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다음 날인 지난 월요일, 하늘은 유난히 청명했다. 대기 중의 먼지와 오염 물질 등이 모두 쓸려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보에 따르면 이날도 LA와 오렌지 카운티 많은 지역에 비 올 확률이 예보돼 있었으나 지난 밤새 비는 모두 그쳤다. ‘이렇게 좋은 날에~‘라는 노랫말이 절로 떠오르는 이날, 많은 아이들은 ‘날씨’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허리케인을 이유로 지난 월요일 휴교령을 내린 교육구가 LA 등 남가주 4개 카운티에서만 40곳이 넘었다. 물론 정상 수업을 한 교육구가 이보다 더 많았지만-. 대학 중에는 칼스테이트 풀러튼과 롱비치 등이 대면 수업을 취소했다. 성인 교육기관 등도 전날 밤 급하게 월요일 휴강 공지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성급한 조처였다.
허리케인 해프닝은 그 전 토요일에도 벌어지고 있었다. 영업시간이 밤 12시까지인 한 맥도널드 매장은 저녁 8시가 좀 지나자 문을 닫아 걸었다. 대신 드라이브 스루만 열어 놓아 차들이 장사진을 쳤다. 허리케인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정전 사태를 지레 걱정한 때문으로 보였다. 불 꺼진 맥도날드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요즘 같은 때 안전을 자신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때쯤 카톡 등에는 부지런히 허리케인 대책이 오갔다. ‘휴대용 전화를 충전해 놓을 것, 건전지 용 플래쉬 라이터를 준비할 것, 차에 개스를 채워 놓을 것…’ etc. 마켓 진열대의 생수 등이 거의 동났다는 뉴스도 떴다. 미디어의 허리케인 집중 보도는 불안감을 높이고 확산시키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한국에서 안부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괜찮냐? LA도 태풍이라며? 게다가 지진까지-“. 첨부된 LA태풍 뉴스를 보니 사진도 어쩌면 실감나는 것을 딱 골라 썼다. 지역에 따라 이번 폭풍우로 피해를 입은 곳도 있으나 대부분 한인들에게 이번 허리케인은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만난 사람들 사이에 “과장이 좀 심했던 것 아냐”라는 말이 오갔다.
허리케인이 아니어도 폭우가 쏟아지면 사막에는 없던 강이 생기고, 급류가 흐른다. 도심 보다는 산간이나 경사진 언덕의 비 피해가 더 크다. 겨울 폭우 때도 그렇다. 모처럼 여름 폭우로 연일 90도를 웃돌던 불볕 더위가 일시적이나마 가시고, 잔디에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된 것은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허리케인 힐러리는 남가주에 근접했을 때 열대성 폭풍(tropical storm)으로 약화됐다가, 인랜드를 통과할 때는 그보다 등급이 낮은 열대성 저기압으로 변해서 빠져나갔다.
허리케인과 폭풍을 구분하는 것은 풍속이다. 강수량은 관계가 없다. 풍속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국가나 권역에 따라 다르나, 미국은 1분을 기준으로 시속 74마일을 넘으면 허리케인, 39~73마일이면 폭풍, 스톰으로 분류한다. 그 보다 약하면 그냥 열대성 저기압이다.
허리케인, 태풍, 사이클론은 모두 같은 기상현상을 가리키는 말-. 발생 지역에 따라 허리케인(북대서양, 북 태평양 중동부), 태풍(typhoon, 북 태평양 서부), 사이클론(남태평양, 인도양)으로 달리 부른다. 해수면 온도가 화씨 80도 이상 되는 곳에서 처음 시작되는 공통점이 있다. 허리케인은 ‘미국판 태풍’인 셈인데, 한국서 여름마다 태풍을 경험했던 이들은 이번 허리케인 예보에 비교적 차분했다.
허리케인이 이렇게 캘리포니아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것은 84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대부분 처음 겪는 일이니 ‘호들갑’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혼란이 있었다. 무더기 휴교 조처와 일부 사재기 소동 등은 대표적인 과잉 반응이었다. 이번 일이 경험이 돼 다음 번에는 더 좀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