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순간 뿐임이니다”(시 90:4)
3000년 전에 살았던 모세가 발견한 인생의 시간, 그리고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베드로가 발견한 인생의 시간은 동일한 관점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던 당시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경고와 지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모세와 베드로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깊은 영적 통찰력으로 인생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시간표>로 <인생의 시간표>를 관조하는 영적 선구자, <선지자의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로 인생을 관조할 줄 알아야 인생을 헛되이 살지않고 하루하루를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무엇이 모세에게,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토록 강한 통찰력을 부여하게 했을까? 반면에, 하루하루를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는 인생으로 전락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주변에는 한여름을 그토록 울어대던 ‘매미(Cicada)’의 울음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땅 속에서 무려 17년동안이나 유충으로 지내다가 겨우 한 철 여름 울다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매미의 생애를 바라보면, 그것이 비록 곤충이라 할지라도 만물의 영장이라 지칭하는 <덧없는 인생>과 다를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모세가 부르짖은 <영원과 하루>, 베드로가 부르짖은 <영원과 하루>. 하나님의 영원이라는 시간표로 바라보는 인생의 시간표는 마치 인간이 한낱 곤충에 불과한 매미를 바라보는 <생의 사슬(Chain of Life)>이라는 단순시각의 시간표에 감히 비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는 오직 현재만 바라보는 짧은 식견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라는 시각으로 아무리 꿰뚫어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안으로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하나님은 볼 수가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만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여름 한 철 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같은 매미를 바라보며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긴 아르튀르 랭보의 시각을 가진다 할지라도 인생은 유한자요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예언한 것입니다(잠 9:10).
이제 한여름의 폭염과 굉음같은 매미의 울음소리는 역사의 시간표 저 너머로 지나가고 가을이 카프카의 변신처럼 온세상을 단풍으로 변하게 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인생시간표가 점점 짧아져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원과 하루>, 이 한 가지를 잊지말아야 모세처럼, 베드로처럼, 시인 아르튀르처럼, 그리고, 카프카처럼 하루하루를 값지게, 의미있게, 희망차게 사는 <지혜로운 인생>, <후회없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베드로후서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