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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아폴로와 아르테미스와 오리온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8-17 12:04:28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그리스 올림포스 산에서 살았다는 열두 신 중에 쌍둥이남매가 있다. 태양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다.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이 남매는 둘 다 활쏘기 명사수여서 궁술의 신으로 불리는 한편 각자 다양한 전문분야를 관장한다. 

델포이 신전의 주인공 아폴론은 태양과 낮, 예언, 의술, 음악과 시를 주관하는 신이다. 반면 아르테미스는 달과 밤, 궁술과 사냥, 야생의 모든 동식물을 관장하면서 평생 결혼하지 않고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순결의 수호신으로 유명하다. 처녀신 아르테미스는 차갑고 무뚝뚝한데다 남자를 너무 혐오해서 자신과 님프들에게 추근대거나 겁탈하려는 남성들은 가차없이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무서운 여신이었다고 묘사된다. 

그런 아르테미스도 딱 한번 사랑에 빠진 일이 있었는데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이 그 연인이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을 탐탁지 않게 여긴 아폴론은 어느 날 멀리서 머리를 내놓고 수영하는 오리온을 보고 아르테미스에게 저것을 쏘아 맞혀보라고 부추겼고, 아르테미스는 누군지 모르고 화살을 당겨 오리온을 죽이고 만다. 뒤늦게 연인의 시체를 보고 큰 슬픔에 빠진 아르테미스는 오리온을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이 21세기에 다시 도전하는 달 탐사계획을 ‘아르테미스’라 명명한 것은 뒤늦게나마 신화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찾은 사려 깊은 선택이다. 50여년 전 인류최초의 달 탐사계획의 이름은 다들 알다시피 ‘아폴로’였다. 달에 가는 우주선 이름이 태양신 아폴로라니… 굉장히 이상한 선택이었지만 백인남성들이 지배하던 당시 미 정부와 나사(NASA)로서는 위대한 우주탐사선에 여자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은 우주비행사 후보조차 될 수 없었던 시절이니까.

이제 최초의 여성과 유색인종 우주비행사를 달로 싣고 갈 ‘아르테미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리고 아르테미스가 싣고 가는 우주선 캡슐의 이름이 바로 ‘오리온’이다. 작년 11월 발사된 제1호의 오리온은 두 인간마네킹을 태운 채 달 궤도를 돌며 모든 장비의 안전 작동을 확인한 후 26일 만에 지구로 귀환했다. 

2024년 5월 발사될 아르테미스 II의 오리온에는 최초의 흑인 비행사 빅터 글로버 주니어를 포함한 4명이 탑승해 10일 동안 지구 궤도와 달 궤도에서 광범위한 실험을 수행한다. 그리고 2025년 마침내 아르테미스Ⅲ의 오리온이 달의 남극에 최초의 여성과 유색인종을 포함한 4명의 우주비행사를 착륙시킬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궁극적으로 달에 상주기지를 짓고, 달 궤도 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Gateway)를 건설한다는 게 나사의 계획이다. 

지난 11일 러시아가 무인 달 탐사선 루나-25를 실은 소유즈 로켓을 발사했다. 루나-25은 오늘(16일) 달 궤도에 진입하고 빠르면 21일 달의 남극에 착륙, 앞으로 1년 동안 다양한 탐사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러시아가 달 탐사에 나선 것은 지난 1976년 이후 처음으로, 우주 강국이었던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푸틴의 야망을 반영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발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구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고, 1961년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지구 궤도를 선회한 후 미국의 자존심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었다. 그 때문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은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대담한 비전을 발표했고, 결국 아폴로 계획이 성공을 이룬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우주 경쟁은 미국 대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 대 중국의 혈전이다. 여기에 인도, 일본, 유럽 등 기타 각국이 찬조출연하고 있는데 이처럼 세계열강이 달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달의 극지방에서 얼음 형태의 물이 발견됐고 희귀 광물과 희토류, 우라늄과 백금 등의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를 앞 다퉈 선점하려고 달려드는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은 무한한 자원 가능성은 물론, 화성 등 다른 행성으로의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달의 남극은 미래 달기지 건설 일순위로 꼽히는 지역이다. 인도 역시 지난달 14일 남극을 목표로 달착륙선 찬드라얀 3호를 쏘아 올렸다. 성공하면 루나 25호와 비슷한 시기에 달 남극지역에 착륙하게 된다. 

현재 달 탐사에 가장 앞선 나라는 중국이다. 2007년 이후 무인탐사선 창어 1호와 유인우주선 창어 2호를 발사했고, 2013년 창어 3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2019년 창어 4호는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고, 2020년 창어 5호가 월석 시료를 채취해 지구로 귀환하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2024년 창어 6호와 7호가 달 남극을 탐사하고, 2027년 창어 8호는 남극기지 건설을 위한 구조시험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1960년대 러시아에 당한 수모를 이번에는 중국에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1969~72년 역사적인 아폴로 11호에 이어 12, 14, 15, 16, 17호가 총 12명의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지만 사실 그때 우주인들이 한 일이라곤 달 적도 부근에서 불과 몇 마일 정도 탐험한 것뿐이다. 달에 얼마나 많은 잠재가치와 자원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철수한 것이다. 

‘아르테미스’가 ‘루나’(로마신화의 보름달), ‘창어’(중국신화의 달의 여신), ‘찬드라얀’(산스크리트어로 달의 차량)보다 먼저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아폴로가 훼방 놓았던 오리온과의 사랑도 달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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