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부산 피난 시절 같은 교회에 다니는 강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낮은 산 언덕에 살며 염소를 키운다. 염소 두 마리로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여섯 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학교라고는 초등학교뿐이지만 부지런하다. 염소를 먹이고 젖을 짜서 배달도 자기가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늘 명랑하다. 나보다 서너살 위인데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뉴욕 프라자 호텔에 조셉 조렌티노라는 문지기(Doorman)가 있었다. 그의 일은 단순하다. 손님에게 인사하고 짐을 들어준다. 이런 단순한 일을 50년 하였다. 소문이 날 정도로 친절하였기 때문에 닉슨 대통령이 일부러 찾아 대통령 표창장을 주었을 정도이다. 하찮은 일 적은 수입의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테레사가 수녀가 되려고 열여덟 살 때 집을 떠났는데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다. “이 작은 손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큰일을 하기 바란다.” 테레사는 유난히 체구가 작다. 그러나 위대한 수녀가 되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기쁨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실낙원 이야기가 나온다. 아담과 하와라는 처음 인간이 에덴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난다.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을 먹되 오직 하나 선악과라고 불리는 과일은 먹어서는 안 된다는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낙원에서 쫓겨난 후 그들 인간은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는 ‘일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일한다는 것은 실상 벌이 아니라 축복이었던 것이다. 일하는 기쁨을 알아야 행복해진다.
화가 알프레드 밀레는 젊어서 친구와 함께 그림 공부를 위하여 파리로 간다. 두 사람이 함께 공부하면 먹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교대로 일하기로 하고 밀레가 그림 공부를 시작하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친구의 기도 소리를 듣고 창문으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친구의 손이 험한 노동으로 그림 공부를 하기는 어렵게 된 것을 보고 연필을 꺼내 친구의 험한 손을 그린 것이 유명한 명화 ‘친구의 손’이다.
예수는 ‘달란트의 비유’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주인이 종 세 사람에게 각각 5달란트, 3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나며 “너희들이 이 돈을 마음대로 써보아라” 하고 말하였다. 돌아와 그 돈을 어떻게 썼느냐고 물으니 5달란트 맡은 종은 열심히 장사하여 5달란트를 더 벌어 바쳤고 3달란트와 1달란트 받은 종들은 “주인님은 몹시 엄한 분이시라 돈을 없애면 큰 야단을 맞을 것이 두려워 받은 돈을 잘 간직하였으니 받으십시오”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을 크게 칭찬하고 다른 종들은 내쫓았다는 이야기이다. 일하는 종을 높이 본 것이다.
화가 밀레의 작품 중에 ‘만종(晩鍾)’이 있다. 농부 내외가 하루의 일을 마치고 멀리 들려오는 교회당의 종소리를 따라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빛의 초점이 농부가 들고 있는 농구(農具)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빛의 점을 농구에 둔 것은 노동의 귀중함을 표현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기독교의 냄새를 없애기 위하여 만종이란 엉뚱한 이름을 붙였다. 원래의 이름은 ‘기도’(sanktus)였다.
사람은 일하는 동물이다. 일에 보람을 느껴야 행복하다. 일과 밥벌이는 다르다. 밥을 먹자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니 밥벌이는 자연히 되는 것이다.
작업은 신성하다. 기독교에서는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해석하며 밥벌이로 해석하지 않는다. 일하는 기쁨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