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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석양 별곡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7-28 09:12:52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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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시인·수필가)  

 

우기 장마가 지나가자 무더위가 들어서긴 했지만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노을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를 다한 해넘이 주변으로 붉은 빛살이 펼쳐진다. 구름 자락 따라 노을이 흐르면 하루 중 으뜸으로 세울 만한 아름다운 시간이 된다. 햇살이 뜨거울수록 노을은 더욱 아름답고 황홀해진다. 활화산 같은 생명력도 언뜻언뜻 보이지만 하룻길 소명을 다한 석양이 배경으로 자리잡으면 평온하고 나른한 행복이 연출된다. 하루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는 여유롭고 겸허해지는 안식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성실하게 하루를 섬긴 도심의 자부심이 역력하다. 노을이 물드는 시간과 마주하면 심신이 편안해지고 무거웠던 피로가 엉길 힘을 잃고 느슨하게 이완되는 시간이 된다.  낙조가 달콤한 추억이라도 몰고 올 것 같은 기대감에 어스름한 해넘이 시간대가 되면 창가에 서서 기울어가는 노을 여운을 바라보는 평화를 즐기게 된다. 해 그림자가 남긴 자작한 저녁 기운이 풀려나기 시작하면 영상이나 영화 속 허구가 아닌 낭만과 서정이 흐르는 현장이 펼쳐진다. 유년의 해질녘 마을 풍경이 연상되고 기억과 상상력이 혼재된 시공을 초월한 전경은 언제나 이듯 고요한 평온과 잔잔한 화목의 느낌을 지켜내고 있다. 신뢰감 같은 공감 여지가 부여되는 풍경이다.

가끔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정한 하늘 배경에서 수채화 물감처럼 번져가는 석양 노을보다 감성은 얇지만 엷은 구름이 비낀 해넘이 낙조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땐 일출의 위대함을 가슴에 담고 하루를 시작하지만 하루가 마무리될 즈음 석양 노을은 그리 눈 여겨 볼 여지가 드물 때가 많다. 사뭇 분주해질 수 밖에 없는 시간 대요 기상 상태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편안한 안식을 예시해 주는 시간일 수도 있을 터인데, 석양을 주시할 수 있는 여분의 여유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어쩔 수 없는 도시 삶이 아쉽고 안타깝다. 

햇살의 하루 여정이 기울기 시작하면 해넘이 석양이 마련한 노을 정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영상으로 담아두곤 한다. 뜻밖의 시도같지만 이방인으로 살아내야 하는 얽힌 난제가 풀어지기도 하고 치유의 지름길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루의 고달픔을 너그럽게 감싸주는 낙조 황홀경이 이울다 보면 자작하니 깔리는 아슴푸레한 저녁 기운이 위로처럼 격려처럼 평안의 위안이 되어 당면한 삶의 무게를 덜어주기도 한다.

노을 빛살이 산하를 물들이면 하루 중 선량해지는 시간 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주기가 되어주 듯 하루에 충실했다는 뿌듯한 자족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이 무렵 잔잔하고 고요한 온기로 하여 쓸쓸한 정적을 느끼게도 하지만 적요한 고적이 호젓한 고요를 불러들이는 적막한 기운이 유쾌한 자극이 되어 마치 하루가 저녁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넉넉함을 베풀어 주기도 한다. 하루를 다하는 동안 긴장으로 조여 있던 경직감이 풀려나고 일상의 이모저모 시달림이 이완되는 숨김없는 아늑함까지 즐길 수 있게 배려해준다. 단조로운 무심까지 편안한 친절로 다사로운 안정감을 덤으로 더해준다. 

지금이 생애 해질녘으로 접어 든 노심에게는 낙조 예찬이 무상의 조화로 다가온다. 오늘 만난 석양은 한용운 시인이 노래했듯 슬프도록 아름답다. 노구 걸음새가 어둔해지기 시작하면 어느덧 생의 해거름으로 낯설고 외로운 길로 접어든 것이라 일러주는 듯 하다. 노을 곁에 서면 평화롭고 고요한 노년으로 흘러가고 싶은 명상에 잠기곤 한다.

석양은 생의 은밀한 음정을 노을로 연주해내고 있다. 서곡이 있고 불타는 기복이 있고 마지막을 어우르는 긴 여음이 있다. 유년의 여림이 서곡으로 준비되고 열정으로 생을 태워보려 했던 뜨거운 시간들을 노을은 절정의 여울을 그려내고 생의 여정이 언덕길을 내려가야 할 황혼 앞에 서 있는 마지막 엔딩까지 대 서곡을 완벽히 연주해내고 있다. 선홍의 노을도, 보라 빛 노을도, 금새 지워질 것 같은 여린 노을도, 같은 하루를 쏟아 부은 아리아의 마지막 대목이 되어준다. 

노을은 이렇듯 시가 있고 선율이 있어 하늘 캠퍼스에 장대한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노을 앞에 서서 얻어지는 깨달음은 최선을 다한 생의 노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아름다울 수 밖에.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살아낼 만한 것인가를 노을 앞에 서면 더욱 선명해 진다.

생애의 가장 찬란한 적기로, 최소한의 결례나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연륜의 자신감이 자격지심을 헤집고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다양성과 함축성이 꽃피는 시기로 받아들이려 한다. 호기심과 비일상적인 소재를 발굴해내고 싶은 욕심이 날개짓을 펴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감성과 사색을 위해 후미지고 으슥한 궁벽을 찾기보다는 전통적 소재에 눈길을 돌리기로 했다. 알려지지 않은 극적인 교훈적 일화에 이정표를 세운다. 완벽할 순 없지만 서정적 서술을 꿈꾸며 석양 별곡을 풍성하게 채워가려 한다. 황혼이 물들지 않으면 푸른 새벽을 기대할 수 없음이라 여린 어둠이 조심스레 내려앉는다. 어둠은 희망을 품고 열어야 할 찬란한 여명을 밤새 준비 한다. 여명 탄생을 위해, 희망찬 새 아침을 열기 위해 깊은 숙명의 시간 속으로 잠겨든다. 

노을이 주는 평화를 더는 심도 깊은 표현으로 끌어내지 못한 안타까움 끝에 아름다움을 향한 기민한 반응에 마음을 기울이라는 욕심이 일렁인다. 놓쳐버린 많은 단어들을 찾아 깊은 밤 동안을 언어의 바다에서 수 없는 유희를 감행하곤 하지만 아직 건져내지 못한 말들, 눈치 채지 못한 표현들을 찾아 노을 길섶을 따라 해질녘 시간대의 유혹에 잠입할 시간이 기다려지곤 한다. 석양 별곡 속에 숨겨진 삶의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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